야권을 중심으로 전기료 누진제 개편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현재의 가정용 전기요금체계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여름 사상 최악의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의 ‘불가’ 방침에도 가정용 전기에만 부과하는 누진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주택용 전력수요 계절별 패턴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주택용 전력의 총괄원가의 50%에도 못 미치는 요금이 적용되는 월 평균 전력소비 100kWh 이하인 가구는 410만4000가구로 전체의 18.2%를 차지했다. 당초 누진요금은 에너지 소비절약과 저소득층 비용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도입됐지만 저소득층만이 아닌 상당수의 가구가 누진요금에 따른 무임승차 혜택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앞으로 기저발전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력 총괄원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저소득 가구에 대한 비용 지원 효과는 더욱 축소될 것으로 주장했다.
또 가구당 월평균 전력 사용량은 1998년 163kWh에서 2014년 226kWh로 매년 증가했지만 2006년 이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누진구간 조정은 없었다. 적정 원가를 반영하는 요금 구조보다 소비절약을 강조했기 때문인데, 현재와 같은 과도한 누진요금 구조가 소비절약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누진요금은 6단계인 경우 1단계의 11.7배에 달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 “누진단계를 3단계로 축소하고 누진배율을 크게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한국전력의 에너지 신사업 투자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방지를 위한 에너지 절약 필요성 등을 내세워 전기료 인하나 개편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의 전기료 수입 급증에 누진제 완화로 소비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에 전기료 판매가 26조 원을 돌파,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7월 전기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5%가량 늘어 상반기 전기 판매량 증가율 1.7%를 넘어섰다. 현재의 누진제 체계에선 전력 소비가 늘수록 한전이 추가적 수익을 거둘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