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11개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중앙은행과 통화당국으로 구성된 EMEAP(Executives’ Meeting of East Asia-Pacific Central Banks)가 역내 통화표시 채권에 투자키로 한 가운데 그 배경과 발표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 우려에 아시아시장에서 자본이탈 우려를 잠재울 필요성이 있었던 데다 영국의 갑작스런 유럽연합(EU) 탈퇴(일명 브렉시트)로 시급히 역내 자본시장을 안정시킬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같은 자금은 최소한 원화 채권시장에 1조원 이상 투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EMEAP는 최근 역내 정부 및 준정부기관 발행 미달러화표시 채권에 투자하는 ABF1을 종료하고, 동 매각 대금을 이용해 역내 통화표시 채권에 투자하는 ABF2에 재투자했다고 밝혔다.
ABF(Pan-Asia Bond Index Fund)는 EMEAP 11개 회원국 중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를 제외한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홍콩 등 8개 회원국이 발행하는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로, EMEAP회원 중앙은행을 대리해 국제결제은행(BIS)이 운용하고 있다.
한국을 예로 들면 ABF1은 한국이 달러표시채권으로 발행한 코리안페이퍼(KP)물에 투자하는 펀드다. ABF2는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발행한 국고채와 통화안정증권(통안채)에 투자하는 펀드인 셈이다. 이에 따라 ABF1에서 ABF2로 재투자했다는 것은 KP물을 팔고 원화표시 국고채와 통안채에 투자했다는 의미다. 즉, 달러를 아시아 8개국 각국의 통화로 바꿔 그 나라 채권에 투자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투자 변화는 우선 각국의 통화를 매수함으로써 해당국의 통화약세를 방어할 수 있다. 아울러 중앙은행이라는 장기투자기관이 해당 국가의 채권을 매수하는 주체가 됨으로써 선진국 자금 유출에 대응하고 해당국 채권투자심리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이같은 펀드 재투자 논의가 지난해부터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같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2013년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신흥국 경기 충격(테이퍼 텐트럼)이 발생한 바 있고, 지난해엔 미국 금리인상 시기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다만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논의된 것으로 최근 금융경제 환경 움직임과는 무관한 내용”이라며 “시장 영향이 없도록 하기 위해 수개월간 이관된 내용이다. 최종 결정은 올 4월이었다”고 해명했다.
한은이 밝힌 장부가 투자자금은 ABF1 10억달러, ABF2 20억달러 규모다. 각각 2003년과 2005년 11개 국가들이 각출해 조성한 것으로 그간 투자자금 회수가 없었고, 현재는 채권투자 수익률만큼 자금규모가 불어나 있는 상태다.
2003년 이후 2015년까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통화표시 채권의 발행규모가 약 1250억 달러에서 8배인 1조 달러 이상 성장했음을 감안하고, 이를 단순비교하면 이번 ABF1에서 ABF2로 투자하는 규모는 8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를 8개 개별국가로 단순히 나눌 경우 각각 10억 달러(1조1475억원, 4월 평균환율 1147.51원 기준)씩 투자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해 국고채 발행 예정규모가 110조1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00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한은 관계자는 “장부가외에 얼마가 투자됐는지는 말해줄수 없다”면서도 “각국 투자규모는 개별 투자국가의 펀딩규모와 각국 채권규모 등에 따른 비중에 따라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개별국가 채권시장 규모에 기반한 포트폴리오 방식으로 투자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