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침 부모님의 영정 앞에서
그리움에 절을 올립니다.
마침
중국 하이난 미션 힐스에서
10코스 180홀을 라운드하고
귀국했던 날이라서 뜻깊습니다.
저는 49년 여름
세브란스 병원(그때는 서울역 앞에 있었답니다)에서
어머님께서 저를 낳으셨다며
몇 안되는 "세브란스人"이라고
그 시절에는
초호화로운 출생이었답니다.
1년도 안되서 6.25가 터져
아버지의 고향으로 피난을 갔고
피난길에서 紅疫(홍역)을 해서
남다른 티를 냈다고
그러나 어머니께서
솜 이불로 감싸 안고
계셔야 해서
마차 위에 앉아서 피난을 가는
호강을 하셨고
갓 스물의 이모께서는
길위에 널부러져 있는
사체들 사이를 걸어가는 내내
울면서 피난을 갔었답니다.
저의 기억은
53년 유치원 시절과
반공포로들(할아버지 양조장과 인쇄소에서 열댓명이 일을 했지요)과 상이군인들의 모습.
54년 유치원 시절과
유치원 졸업(사실은 억지로 떠밀린 졸업 이니까
퇴학(退學)입니다)
이미 3월에
누나 따라 학교에 갔다가
국민학교에 입학을 해서
왼쪽 가슴에 수건 접어
이름표와 함께 차고 다니던 국민학생이었지요.
시청앞 덕수궁 전차 정거장에서
출발하는 전차에 매달려
전차가 급정거를 했던 일.
(엄마가 행동이 느리셨지요)
화신백화점 엘리베이터의 신기함과
동화백화점(지금의 신세계)에서
처음 먹었던 돈까스의 맛.
4.19 데모때 붓글씨 잘썼던
경찰서 경무과장이셨습니다)가
쓴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대에
합류했던 일
5.16 혁명공약과
"隱人(은인) 自重(자중)하던
軍部(군부)는..."으로 시작하던
방송의 머리부분을 기억 합니다.
당시 수학과목 선생님이셨던
박수철선생님(육사중퇴)께서
시골의 양촌면장으로 가시면서
어린 우리들에게
학생은 오로지 공부를 잘 해야 한다시던 말씀을 기억 합니다.
그때부터의 대부분 일들을
희한하게 기억을 합니다.
정작 기억 해야 할
그 많은 지식들은 기억 못하면서
저를 가르쳐 주신 은사님들은
확실하게 기억하니 신기하지요
아마도
옛 기억이 가득 차 있어서
새 지식이 들어갈
餘地(여지)가 없나 봅니다.
믿어집니까?
그 오래전 카드를 치면서
속였던 친구의 행위까지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그래서 한때는
영상 기억장치
문자 기억장치
음성 기억장치라는
별명을 듣고 살았습니다.
이런 기억력은 살아가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들인데
기억을 합니다.
장마비 예보까지 있는 여름 날
지루하고 고루한
옛 얘기를 늘어 놓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순 여덟이라고 하니까
제법 肅然(숙연)해지네요....
3년 뒤
2019년 생일이 7순 입니다.
지난 2009년 환갑날
전국의 제자 168명을 청해서
세계 최초 환갑골프를 했었지요
전국에서
버스로 4대에 나누어 타고 오신
제자분들께
모처럼 싸부가 그린피를 내드려
골프를 치게 해드렸는데
(제가 개인으로는 그린피를 가장 많이 냈지요 2370만원...)
오는 2019년 7월3일
7순날에도 또 하려고 합니다.
300타석의 드림레인지에서 타석마다 제자분들을 세워놓고
레인지 중앙에 나가서
마지막 레슨을 하면서
(무엇을 가르쳤는지,
앞으로 이렇게 골프를 치라고)
은퇴를 선언 하려고 합니다.
짧은 레슨 뒤에
바다코스로 옮겨
레이크 코스와 클래식 코스에서
36홀 샷건으로
7순기념 골프 잔치를 할겁니다.
기대해주시고
꼭 참석해주세요.
그날 이후에는
말 그대로 은퇴생활을 할겁니다.
남아있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릅니다.
동기들이 다 제대를 한
사고병이야
언제 명령을 받고
병기와 관물을 반납한들
상관이 없겠지요.
어차피 滿期(만기)는 지났다는
생각 입니다.
옛날말로
언제 죽어도 好喪(호상)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갑니다.
제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 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심으로
양싸부는 행복 합니다.
시원하고 행복한 여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