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이 식물을 원료로 만든 의약품에 대해 발암물질 '벤조피렌' 관리방안을 대폭 강화한다. 최근 쑥을 원료로 하는 '스티렌'과 스티렌 복제약 80여개 품목의 벤조피렌 저감화에 이은 후속조치다. 인사돌, 기넥신 등 일반의약품도 벤조피렌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천연물의약품 벤조피렌 안전성 검토 강화 관련 간담회'를 열어 식물 유래 의약품의 벤조피렌 관리 강화 방안을 소개했다.
벤조피렌은 발암물질의 일종으로 주로 300~600℃ 온도에서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될 때 생성된다. 주로 식물을 원료로 만드는 천연물의약품은 원료의 가열과 건조 과정에서 벤조피렌 발생 위험에 노출된다.
식약처는 △아이비엽에탄올엑스 △달맞이꽃종자유 △포도씨엑스 △위령선ㆍ괄루근ㆍ하고초에탄올엑스 △애엽에탄올엑스 △애엽이소프로판올엑스 △자오가ㆍ우슬ㆍ방풍ㆍ두충ㆍ구척ㆍ흑두엑스 △황련수포화부탄올엑스 △현호색ㆍ견우자에탄올엑스 △당귀ㆍ목과ㆍ방풍ㆍ속단ㆍ오가피ㆍ우슬ㆍ위령선ㆍ육계ㆍ진교ㆍ천궁ㆍ천마ㆍ홍화에탄올엑스 △옥수수불검화정량추출물 △은행엽엑스 △빌베리엑스 △밀크시슬엑스 △펠라고니움시도이데스에탄올추출물 등 15개 성분으로 구성된 의약품은 2017년 12월말까지 벤조피렌 검출량을 일정 수준으로 낮춘 원료의약품을 등록하라고 지시했다.
벤조피렌 원료의약품 관리 대상에는 안국약품의 '시네츄라', 동아에스티의 '모티리톤', 녹십자의 '신바로', SK케미칼의 '조인스' 등 식물을 원료로 만든 천연물신약이 대거 포함된다. 또 동국제약의 '인사돌', SK케미칼의 '기넥신에프', 동아제약의 '써큐란' 등 식물 성분이 들어있는 일반의약품도 벤조피렌 관리 대상으로 지목됐다.
은행엽엑스 성분 200여개 품목을 포함해 총 700여개 제품이 내년 말까지 벤조피렌을 줄인 원료의약품을 식약처에 등록해야 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제약사들은 벤조피렌 노출안전역(MOE)이라는 계산식을 적용해 원료의약품에 검출되는 벤조피렌이 일정 수준 (1일 최대 복용량 기준 벤조피렌 노출안전역 10⁴이상) 이하로 낮춘 제품만 원료의약품 등록(DMF)을 허용하겠다고 공표했다. 식약처가 제시한 기준 이상으로 원료의약품에 벤조피렌이 검출되면 원료의약품 등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2018년부터 적합 원료의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완제의약품을 출하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식약처는 등록된 원료의약품의 벤조피렌 검출량이 ‘위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음’(MOE 10⁶ 이상)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별도의 저감화 지시를 통해 벤조피렌 검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최근 스티렌의 벤조피렌 저감화 과정을 통해 도출한 안전관리 방안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말 스티렌과 스티렌 복제약 업체 89곳을 대상으로 벤조피렌 검출량을 줄이지 않은 제품은 올해 6월부터 출하를 금지한다고 공표했다. 제약사들은 벤조피렌을 줄이는 방법을 수소문했고, 결국 원료의약품 업체로부터 규격에 맞는 원료를 공급받는 방안을 찾아냈다.
제약사들은 중국 원료의약품 업체 3~4곳로부터 스티렌의 원료인 '애엽추출물'을 공급받는데, 원료 업체들이 쑥으로 애엽추출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농축할 때 온도를 낮추고, 활성탄을 활용해 서서히 유효 성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벤조피렌을 줄였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천연물의약품 역시 원료의약품에서 벤조피렌을 줄이면 완제의약품 제조 공정에서 별도의 공정을 추가하지 않아도 벤조피렌 검출량을 안전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식약처의 시각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내년까지 식물 유래 의약품의 원료의약품을 등록할 때 벤조피렌 검출량도 기재하면 된다"면서 "2018년부터는 유통 중인 완제의약품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식약처의 벤조피렌 관리방안 강화에 대해 제약업체들은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스티렌의 경우에도 애초에는 식약처가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가 점차적으로 규제를 강화해 제약업체들이 원료의약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동안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스티렌의 원료에 새로운 공정이 추가되면서 원료 가격이 10~20% 가량 높아졌다"면서 "식약처가 단계적으로 벤조피렌 저감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번복, 일괄적으로 식물 원료 전 제품에 대해 관리방안을 강화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