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이오산업이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한 핵심 키는 '창업'입니다. 적어도 1000개의 바이오 스타트업이 창업하고 그 성공과 실패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산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64)은 2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코리아바이오파크에서 가진 바이오스펙테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 같이 강조했다.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등으로 전 산업군에 퍼스트무버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현재 산업화 초기 단계에 접어든 바이오산업의 경우 기술 지식이 집약된 분야로 핵심특허 및 신기술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각종 시스템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산업의 성장공식이었던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발주자가 만든 신사업이나 제품을 빠르게 쫓아가기 위해 창의성 자율성보다는 일사불란함을 요구하던 방식이다. 과거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정부가 말하는 바이오 7대 강국 건설은 요원하다.
서 회장은 "바이오산업은 과거와 같은 탑(Top)-다운(Down) 방식이 아닌 바텀(Bottom)-업(up) 방식으로 가야 한다"면서 "정부는 지원하되 규제는 풀어야 바이오의 산업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협회가 주창하고 있는 스타트업 1000개 육성도 그 연장선에 있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이 창업하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산업화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실패를 포용하는 지원이다. 10개 이상의 건실한 바이오기업이 나온다면 바이오는 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국내 바이오산업은 성장할 수 있는 축적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만명의 훈련된 의사들이 있고 일찌감치 미국식 의료체계를 받아들여 표준화돼 있으며 미래의학의 기반인 IT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의 경쟁력은 45억에 달하는 아시아에 속한다는 것이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서양인과 동양인의 다른 유전적 특징이 확인되고 있다. 그간 서양인에 맞게 만들어진 치료법이나 의약품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서 회장은 "아시아인의 콘텐츠를 확보하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서 "다만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유전정보와 진료정보를 합친 바이오 빅데이터 확보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협회가 한·중·일 네트워크 강화를 주력사업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 회장이 속한 마크로젠은 최근 발족한 비영리 컨소시엄 '지놈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GenomeAsia 100K Initiative)'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놈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는 향후 3년 동안 1200억 원(1억 달러)을 투자해 아시아인 10만 명의 유전체 정보를 연구·분석하는 프로젝트다.
서 회장은 그러나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리더십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바이오 육성 정책이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흩어져 있는데다 이를 통합해 관리할 콘트롤타워 마저 없다는 설명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산업은 스피드가 생명인데 현재 정부는 스피드를 관리할 리더십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자칫 우리 바이오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처나 기관의 이해관계로 인해 국제교류의 장인 '바이오코리아'가 특정 기관 주도로 열리는 점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바이오산업은 전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미국이 주도한 인간 지놈 프로젝트의 토양 아래 급증하는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치료에서 예방중심 의학으로의 전환, 정보·정밀 의학의 발전은 필연적이다.
특히 기술의 발달은 한 사람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비용을 25억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낮췄다. 누구나 유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산업은 현재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면서 "협회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