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법과 질서, 정의, 관계, 정치권력, 시장, 나랏돈, 글로벌 금융시대, 안정과 생존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사이의 상호관계를 풀어쓴 책이다. 현재의 법 문제를 다루면서도 역사 속에서 풍부한 사례나 법 이론의 발전을 곁들이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법 문제를 끊임없이 다룬다. 의회 권력의 확대와 의원입법의 문제점이 노출되기 시작하는 우리 사회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날과 같이 의회나 정부가 필요한 정책이 있으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려놓고 법의 형식을 빌려 규범력을 채우려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만연한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 우리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지켜봤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률은 헌법재판소의 해결이 기대되기도 한다. 저자는 사법부의 역할을 이렇게 평가한다. “행정부는 정책을 통해 선택하지만 사법부는 재판을 통해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낸다. 판사는 결투의 룰을 지키고 공정하게 승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주관하고 판단한다.”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달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선택이므로 사법부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재판관의 판단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센 항의는 없었다. 물론 입법부에 의한 비효율성은 높아지겠지만 헌재는 보수적 법 해석에 머물고 말았다.
재정법 전문가이자 독일 연방정부의 공행정연구소장인 지코 교수는 날로 늘어나는 입법부에 의한 선심성 예산 배분에 대해 합당한 전망과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적절히 집행하고 있는지 감시할 가장 최적의 적임자는 의회다. 하지만 의회는 국민이 낸 세금을 적절히 집행하는 데 가장 최대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인들을 만나면 지나치게 광범위한 배임죄 적용에 대해 “누가 위험을 안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배임에 대한 혐의 판단과 법 적용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과거에는 재판부가 적절한 양형을 통해 경영상 판단과 배임의 적정선을 그어주었다. 그런데 대기업 오너들의 전횡으로 인해 악화된 사회 분위기는 배임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요구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가 과거의 경제 위기에서 배울 교훈을 이렇게 정리해서 제시한다. “사회적인 균형 또는 견제 기능이 발휘됨으로써 리스크의 크기가 과도하게 커져 가거나 혹은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행위들이 적절한 선에서 견제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그 메커니즘이 바로 법이다.” 법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