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핵폐기물보다 무서운 어른들의 무관심

입력 2016-06-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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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나와 친구들과 집 앞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옆 자리 어른들이 TV 광고를 보며 옥신각신하기에 들어보니 내가 아는 내용이다. 그렇잖아도 어른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미룬다고 해결 안 되지”, “뭐든 미루는 건 안 좋아”

“근데 전기에 무슨 책임?”, “전기의 30%가 원자력발전소에서 온다고?”

“사용후핵연료가 뭔데?”, “뭘 어떻게 준비하라고?”

“정부에서 잘해야겠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행어인 ‘기승전’이 생각났다. 요즘 워낙 자주 쓰여 국어사전에도 올랐다는데, 내내 이야기를 잘 풀어가다가 결론에 엉뚱한 얘기로 흐를 때 쓰인다. 이 얘기는 바로 ‘기승전 무책임’이다. 미루는 건 안 좋다면서 정부만의 책임처럼 잘하라니….

생각 같아서는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괜히 오해하실 거 같아 차마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그래도 친구들과 지난 8일과 9일 '방폐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의 미래세대 타운홀 미팅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알고 깨달은 점을 다시 얘기하는 기회가 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전기가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놀랐던 생각, 전기가 제대로 안 들어와 집집마다 불을 끄고 살았다는 얘기는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지,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휴대폰, 노트북, 지하철, 이어폰, 무선 충전기, 진동벨 등 하루의 모든 시간이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게임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깜짝 놀랐다.

이러한 전기의 30%를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낸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위험하다 여겼던 원자력발전소가 이산화탄소 배출면에서 신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낮다는 점도 신기했다. 원자력발전소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전기를 생산하면 ‘사용후핵연료’라는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이다. 강의를 해 주신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원자력발전소 운전원이 쓴 마스크 등 방사능이 낮은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구하는데 19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보다 훨씬 위험한 고준위 방폐물, 어른들이 핵폐기물이라 부르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부지는 과연 언제쯤 구할 수 있을까?

우리 학교 뿐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50여명이 한데 모여 8시간의 열띤 토론 끝에 우리는 그 답에 조금은 다가간 것 같다. 서로 다른 생각을 들어보며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의 키워드를 정리했더니 ①안전 최우선 ②대책마련 ③인식개선 ④경제적 효율성 ⑤소통을 통한 합의 ⑥정보공개 등의 순서로 키워드가 추려졌다.

우리가 ‘미래세대 컨센서스’로 이름 붙인 이 내용에 대해 아직 어른들은 별 관심을 안 보이지만, 우리는 이번에 분명히 알게 됐다. 사용후핵연료 안전한 관리는 과학자나 정치가, 정부나 원전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것을…. 우리 어른들, ‘기승전 무책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이의경 장훈고등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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