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보러갔다 박찬욱에 홀리다

입력 2016-06-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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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리뷰

1. 이름은 히데코(김민희). 이모부의 은밀한 통제 아래 오랜 시간 살아왔다. 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녀는 이모부의 도구가 돼서 낭독을 해야 한다. ‘답답하다’ 2. 사기꾼 백작(하정우). 낭독회에 갔다가 히데코를 본다. 그녀의 엄청난 재산이 탐난다. ‘저걸 어떻게?’ 3. 고아로 태어나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숙희(김태리). 백작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히데코를 살살 꾀어 백작에게 이어만 주면 두둑한 사례금을 준단다. ‘식은 죽 먹기 아니야?’ 4.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가. 히데코와 그녀의 하녀로 위장한 숙희. ‘왜 자꾸 당신이 밟히는 거지?’

‘아가씨’의 원작 소설은 소매치기를 뜻하는 ‘핑거스미스’(Finger Smith). 영문 제목은 ‘하녀’(The handmaiden), 불어제목은 또 ‘아가씨’(Madmoiselle)다. 그러니까, ‘아가씨’는 소매치기인 하녀와 아가씨의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아가씨 역시 탁월한 소매치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가씨가 훔친 것은 아마도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소개되고 있는 ‘아가씨’의 제목은 영화가 취하고 있는 3막 구성과 맞물려 더욱 절묘해 진다.

‘아가씨’의 1부는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2부는 같은 상황을 히데코의 시선에서 다시 복기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3부에서 다시 전진한다. 2부의 경우 1부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1부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감정의 퍼즐이 맞춰지는데,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하며 심리적 서스펜스와 궁금증을 유발한다.

박찬욱은 원작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그리고 소설 속 활자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상상을 하며, 때론 낄낄대고, 때론 흥분하고, 때론 통쾌해했을 게 자명하다. 박찬욱 감독의 또 다른 소설원작의 영화 ‘올드보이’와 ‘박쥐’가 그랬듯, ‘아가씨’ 역시 원작의 플롯에 얽매이지 않는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후반부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아가씨는 보다 농염하게, 하녀는 보다 당차게, 코오즈키는 보다 변태적으로, 백작은 보다 인간적으로 변모했다. 원작에 기반한 영화지만, 분위기를 축조한 것은 오로지 박찬욱의 감성이라는 의미다.

‘아가씨’에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아가씨와 하녀의 성적 묘사일 것이다. 두 여자 사이의 섹스는 예상보다 수위가 높고, 과감하고, 길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려진다. 하지만 높은 수위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거나 성적밀도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섹슈얼리티는 단순한 성적해위가 아니라, 두 여주인공의 내면을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들의 연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 웅크리고 있던 두 여성은, 그렇게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넓은 세계로 탈주한다.

최근작들에서 김민희가 보여준 연기는 놀라웠지만, 이번에는 특히 그렇다. ‘아가씨’는 숨소리부터 미세한 음성까지, 김민희의 모든 것을 담아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신인 김태리는 딜레마에 놓인 인물의 감정을 사랑스럽게 연기한다. 당찬 여배우의, 당찬 등장이다. 변태성욕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는 조진웅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리고 하정우다. ‘아가씨’에서 백작은 하정우라는 배우를 만나 특유의 리듬감을 입었다. 보통의 장르영화에서 여자를 유혹하는 캐릭터가 지닐법한 ‘뻔한’ 상투성이 하정우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말끔하게 지워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팽팽하게 조율한 것은 박찬욱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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