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2일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 후임으로 앨런 그린스펀((1926. 3. 6~)을 지명하면서 그린스펀의 전설이 시작됐다. 연준 의장 임기를 네 차례나 연임한 그린스펀은 윌리엄 마틴(19년간 재임) 이후 역대 두 번째 장수 연준 의장(18년 6개월)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의 재임 시절 미국은 사상 최장의 호황기(1991~2001년)를 기록했다. 28년 만의 최저 실업률, 29년 만의 미국 재정수지 흑자 등 거시경제적으로 굵직굵직한 업적이 그린스펀 시대에 이뤄졌다. 1987년 뉴욕증시가 급락한 블랙먼데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닷컴버블 붕괴와 9ㆍ11 테러 등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린스펀은 이를 잘 극복했다. 이에 통화정책의 신(神), 세계 경제대통령 등 온갖 찬사가 그린스펀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2006년 벤 버냉키에게 연준 의장직을 물려주고 나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오욕을 뒤집어쓰게 된다.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를 유발한 ‘그린스펀 쇼크’도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단서로 꼽혔다.
모호한 화법으로 유명했던 그린스펀과 달리 후임자인 버냉키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을 정례화하는 등 시장과의 의사소통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영광과 오욕이 함께한 그린스펀이지만 여전히 연준 의장의 대명사가 아닐 수 없다.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 ‘소프트패치(soft patch)’ 등 그린스펀이 창안한 단어들은 지금도 널리 쓰이며 그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