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와 실리콘밸리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심심풀이 퀴즈다.
노키아와 블랙베리처럼 잘 나가던 IT 기업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상황을 경험하다 보니 기업의 부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일상화된 듯하다.
시가총액(5월 31일 뉴욕증시 종가 기준) 세계 최상위 자리를 4위(엑슨모빌)와 5위(버크셔해서웨이)를 빼놓고는 이들 5개사가 석권하고 있을 정도니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애플은 시가총액 5468억 달러(약 650조원)로 세계 1위이고, 7위인 페이스북도 3398억 달러(약 404조원)로 삼성전자(185조원)의 2배를 훌쩍 넘는다. 그러니 이런 퀴즈는 심심풀이라기보다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기업의 최신 정보를 격이 없이 교류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1년 전쯤에는 시가총액 2위인 구글이 이 퀴즈게임의 희생양이었다. 페이스북이 급성장하면서 구글의 광고시장을 급속히 잠식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광고시장의 기반을 다잡고 인공지능(AI)·자율운행차 등 새로운 영역으로 치고 나가면서 요주의 대상에서 벗어났다.
얼마 전부터는 화살이 애플을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의 판매 실적과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웠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해 수익이 당초 우려와는 달리 크게 증가하면서 주가가 안정을 되찾는 듯했으나 올 1분기 어닝쇼크로 직격탄을 맞았다. 주가가 1년 전에 비해 24.0%나 빠지면서 한때 시가총액 1위 자리를 구글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퀴즈의 정답이 나온 것 같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지난 5월 중순 투자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애플 주식 980만주를 매입했다고 밝히면서 퀴즈 풀이에 큰 변수가 생겼다. 워런 버핏 회장이 망해가는 회사의 주식을 매입했을 리 없다. 애플의 주가가 급락한 틈을 타 10억7000만 달러(약 1조2733억원·1분기 말 주가 기준)의 주식을 매입한 것이다. 이 덕분에 애플 주가는 5월 중 2.6% 반등했고 퀴즈 풀이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앞두고 방한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힌트를 줬다. 300여명의 기자들이 운집한 기자 회견장에서 아이폰6s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슈미트 회장은 “삼성 갤럭시7이 훨씬 우수하다”면서도 본인은 정작 경쟁사인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월가와 실리콘밸리 사람들에게는 큰 힌트다.
흔히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예기치 못한 경쟁자의 기습에 매우 취약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프리 파커(Geoffrey Parker) 툴레인대 교수는 공동 저술한 ‘플랫폼 혁명(Platform Revolution)’에서 이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애플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생산·판매하는 ‘파이프라인’형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앱 스토어를 통해 개발자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외풍에도 끄떡없다는 설명이다.
고(故) 스티브 잡스가 벤치마킹한 MS는 IT 업계에서는 최초이자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이다. 신제품 개발에 잇달아 실패하고 데스크톱 시장이 위축되어도 ‘윈도 운영체제’라는 플랫폼으로 세계 3대 기업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부호다.
플랫폼은 열차역 승강장이다. 많은 사람과 열차가 오가는 큰 역이 망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새 역을 세우기가 어렵고 키우기는 더 어렵다. 기존의 큰 역끼리 경쟁하며 엎치락뒤치락할 따름이다. 5월의 마지막 날 페이스북과 아마존은 6위와 7위 자리를 맞바꾸었다.
이런 여건에서도 우리 IT 기업들은 글로벌 플랫폼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지리·언어·인구의 벽을 넘어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자리매김한 인천국제공항과 외국에서 플랫폼으로 우뚝 선 라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