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는 ‘스토커’(2013)로 할리우드를 경험한 박찬욱 감독이 한국으로 돌아와 만든 첫 장편이다. ‘올드보이’ 제작진의 결합으로 일찍이 비상한 관심을 모은 영화는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다시 한 번 13년 전의 영광을 노린다.
‘스토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를 한편 더 만들어 여성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바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서 시작된, 이 세상 딸들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관심이 ‘스토커’를 거처 ‘아가씨’에서 비로소 완성된 셈이다. 딜레마에 빠진 딸들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칸에서 만나 들어봤다.
△칸에서 ‘아가씨’를 처음으로 공개한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갈수록 영화 후반작업 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아가씨’ 칸 버전을 보내고 나서도 계속 후반작업을 했다. 칸에 오기 전날 에도 밤샘 작업을 했는데, 중간에는 링거도 맞았다.(웃음) 그러다보니 여기 와 있는 게 ‘좋다/나쁘다’는 마음보다, 출국 전에 개봉판을 끝내놓고 와서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마음이 크다."
△‘아가씨’는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의 어떤 모티브에 반해서 재창조하고 싶었나.
"어떤 감독이라도 ‘핑거스미스’를 읽으면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너무 재미있으니까.(웃음) 반전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인물이나 풍속 묘사가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끌렸던 것은 하녀가 아가씨의 이빨을 갈아주는 대목이었다. 이를 갈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숨소리와 향기. 그 대목을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스토커’를 연출한 경험이 이번 영화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영향이 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촬영 횟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박쥐’의 경우 100회차 가까이 찍었다. 현장에서 송강호-촬영감독과 끊임없이 회의하고 편집을 하며 찍다보니 100회차가 됐다. 그런데 미국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촬영시간이 엄격해서 하루 12시간씩 딱 40회에 영화를 완성해야 했다. 그걸 경험하고 돌아와서 ‘아가씨’를 준비하는데, 한국도 표준근로계약이 생기면서 환경이 바뀌어 있더라. 촬영 횟수를 오버하면 막대한 촬영비가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12시간을 초과하지 말아야 했기에 시간을 잘 써야 했다. 촉박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촬영을 빨리 끝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다분히 미국에서 받은 영향이다.(웃음)"
△금기와 딜레마를 꾸준히 다루고 있다. 딜레마에 놓인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집중하고 있는데.
"모든 영화가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봤을 때, 딜레마 상황이야말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기 좋은 효과적인 장치라 생각한다."
△‘스토커’에 이어 여성의 성장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내놓았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강해지는 것 같다.
"마침 칸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발자크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런 문구가 있었다. “모든 위대한 사람에게서 여성적인 섬세함이 발견된다”라는 구절이. 내가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딸을 키워가면서 내 안의 여성적인 면모를 느끼게 되고 거기에 더 관심이 가지게 된다. 남자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는 여성성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에로티시즘에 대한 강렬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성(性)은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중 하나다.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것이 영화 만드는 사람의 의무라면, 성은 피해가기 힘들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통해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정에 충실하면,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감정이라면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