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현재 1·2심에 계류 중인 비슷한 사건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쟁점인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여부에 관한 판단이 나온 만큼 앞으로 보험사와 가입자들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소멸시효 기간이 지났는지를 놓고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는 자살 보험금을 놓고 30~40건의 소송이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추가로 자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가입자들도 다수 있는 만큼 앞으로 소송 건수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서는 계약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인 소멸시효 완성 여부가 중요 쟁점이다. 원래 2년이었던 상법상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기간은 지난해 3년으로 개정됐지만, 자살 보험금 지급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은 표준약관을 고치기 이전 사례에 한정되기 때문에 '계약자가 숨진 날부터 2년이 지났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경우에도 자살 보험금이 지급될 수 있다. 법원은 한쪽 당사자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게 사회통념상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실제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 보험금 소송 1·2심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자살이 재해사망보험금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안내를 했다면 보험사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승소할 확률이 높다. 반면 보험사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거나 보험금 지급을 일방적으로 미뤘다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기 어렵고, 이와 무관하게 돈을 지급해야 할 수도 있다. 소멸시효가 지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은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건수는 1564건으로 미지급액은 약 1000억원에 이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줄소송으로 이어지지 않고 금융감독원의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보험소송 전문가인 최병문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소멸시효가 끝났어도 감독기관인 금감원이 ‘소급해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은 17일 생보사에 자살보험금 지급 권고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부 자살은 아예 ‘재해’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보험약관 ‘재해분류표’에 있는 재해로 사망할 경우에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재해분류표는 수상운수 사고, 추락 등 32가지 사고유형을 정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이 사고유형에 속하지 않는 자살도 전체의 10% 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