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잊혀질 권리, 잊혀지려는 꼼수

입력 2016-05-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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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부 차장

언론사 편집국에는 종종 옛 기사의 수정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본지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 총수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았던 특수관계인은 “이제 그 양반과 관계가 끝났다. 기사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바탕으로 한, 세 문장짜리 단신이었습니다.

어느 회사의 새 주인은 옛 기사에 올라온 회사 대표 이름을 모조리 자기의 것으로 바꿔달라며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본지 역시 기사 수정 또는 삭제와 관련한 내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종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진 기소사건 △과도한 개인정보(사진 포함)의 노출 △보도자료 배포기관의 오류로 인한 기사 오보 등입니다. 당사자 또는 관련기관의 요청과 증빙이 확인되면 내부 논의를 거쳐 온라인 기사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잊혀질 권리’를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공시 내용의 옛 애인(?)과 회사의 새 대표이사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이런 권리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자공시를 통해 밝혀진 이름이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어도 역사성을 지닌 기사는 바꿀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예전 대통령 이름까지 바꿀 수 없는 일이니까요.

다만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이전보다 크게 확대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발효되고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공청회나 세미나 등 다양한 형태의 논의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돈이 되겠다’ 싶었는지 온라인상 불리한 정보를 모조리 찾아내 삭제해주는 대행업체도 등장했습니다.

이 같은 잊혀질 권리는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하기도 합니다. 즉 잊혀질 권리를 과도하게 인정하면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감시자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약화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언론사의 기사는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이 되기도 하니까요. 찬반 논의가 뜨거운 만큼 사회적 혜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반면 특정 이슈 뒤에 숨어서 조용히 묻혀 가려는 ‘꼼수’도 분명 존재합니다. 잊혀질 권리를 악용하는 사례들이지요.

BBK사건 특별수사팀이 패소하던 날, 언론사 대부분의 관심은 예고 없이 튀어나온 ‘서태지-이지아 이혼’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달 초,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사자인 옥시의 공식사과 뒤에는 교육부가 있었습니다. 옥시에 눈과 귀가 몰려 있던 날, 교육부는 로스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나아가 “부정 입학자는 있었지만, 합격 취소는 불가능하다”는 솜방망이 대처를 밝혀 비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날에 시작한 황금연휴를 즐기던 사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희롱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잊혀지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관심을 갖는 뉴스 뒤에 그들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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