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 이야기] 친정의 힘

입력 2016-04-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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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경영연구소장

딸이 입덧이 심하여 집에 한 1주일 와 있었다.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음식을 만들면 입덧이 더욱 심했다고 했다. 그런데 친정에 오더니 입덧도 덜하고 잠도 잘 잤다. 딸아이는 모든 것이 친정의 힘이라고 했다. 엄마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이 그리웠단다. 아내와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예전에 다녔던 동네의 맛집도 순례하면서 모처럼 잘 먹었다. 몸 상태가 좋은지 ‘여봉봉’으로 저장해 둔 사위와 통화를 하느라 전화를 붙들고 있는 딸을 보며 감사했다. 엄마가 돌아가셨거나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 친정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결혼한 딸들이 엄마를 생각하면 고마움, 미안함, 짠함이 밀려온다고 한다. ‘엄마’라는 단어만큼 많은 의미를 담은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러나 서운함이나 원망, 미움을 떠올리는 딸도 있다. 그 이전의 모녀지간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갈등이 재현되는 것이다. 조금만 잘해도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 바라는 것이 별로 없고 기대치도 낮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엄청나게 신경 쓰며 살아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관계도 있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엄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야?”, “그 정도는 해 줘야 되는 거 아냐?”라며 대드는 딸이 있는가 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래?”, “이렇게 살려고 내가 그렇게 반대하던 그놈한테 시집갔어?”라고 퍼붓는 엄마도 있다. 시댁보다 친정이 더 불편하다는 딸들도 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개입하는 엄마나, 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부모라면 편할 수가 없다. 적당히 예의를 갖추는 시어머니보다 감정적으로 부닥칠 위험도 크다.

친정의 진정한 힘은 경제적인 부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가 결혼한 딸의 독립성과 자율성, 사생활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경계를 인정하고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도 자제해야겠지만 원하지도 않는 지원으로 의존적인 딸을 만드는 것도 조심할 일이다.

딸아이와 아내를 보며 친정 아버지가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뭐니 뭐니 해도 아내와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짐이 되거나 걱정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손주가 어느 정도 크면 손주들과 잘 놀아주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자식들이 중간에서 마음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돈들과도 잘 지내야겠다. 또한 딸아이만 편들 게 아니라 따끔한 얘기도 해주고 사위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객관적인 친정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남동생을 편애한다거나 며느리만 더 챙긴다는 오해가 없도록 신경 써야겠다.

더러는 친정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인생 선배, 결혼생활의 선배로서 딸아이의 멘토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아내와의 갈등이나 사위와 딸과의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절제할 줄도 알아야겠다.

봄에 아이를 가졌다고 태명을 ‘봄’이라고 지었단다. 진정으로 ‘봄이 엄마’에게 오래도록 힘을 불어넣어주는 친정을 만들기 위해 참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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