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⑪] 김창희 前 대우증권 사장

입력 2016-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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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인재배출…90년대 증권史에 ‘최초’ ‘최고’ 족적

‘국내 최초의 민간 경제연구소 설립’, ‘국내 증권회사의 최초 해외사무소 개설’, ‘업계 최고 수준의 애널리스트 다수 배출’. 국내 증권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이라는 이름에는 국내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적어도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대우증권은 증권업계 독보적인 1위였다.

고(故)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1937~2011년)은 대우증권의 전성기를 만들고 이끈 인물이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16년간이나 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했던 김 전 사장의 업적은 단순히 한 회사를 발전시킨 것 이상이다. 대우그룹의 글로벌 경영에 발맞춘 대우증권의 해외진출은 한국증권산업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또 김 전 사장이 ‘인재양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결과 그의 재임기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은 현재도 각계에 진출해 국내 산업을 일선에서 이끌고 있다.

◇ 김우중 前 회장 인연으로 대우증권 입사=김 전 사장은 한국 증권산업의 역사를 이끌어온 원로 가운데서도 ‘정통 증권인’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1937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51회)와 연세대 경제학과(58학번ㆍ1961년 졸업)를 나왔다. 증권업계에는 1964년 1월 4일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에 입사하며 증권업계에 발을 들였다. 변변한 증권시장 기반이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핵심기관인 거래소에는 인재가 몰리던 시기였다. 거래소는 1963년 첫 공채를 시행한 이듬해 특별 채용된 것을 보면, 그가 당시 꼽히는 우수한 재원이었기 때문으로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김 전 사장은 업무를 조용하면서 꼼꼼하게 처리하는 직원이었다고 한다. 거래소 신입직원 시절 함께 근무했던 박창배 전 거래소 이사장은 “김창희 씨는 맡은 일을 조용하게 묵묵히 처리하는 타입이었다”면서 “당시 함께 있던 신입직원들이 대부분 58학번이었고 김창희씨는 56학번이었는데, 말이 없고 과묵하면서도 동료와는 골고루 잘 어울려 지냈다”고 회상했다.

이후 김 전 사장은 1968년 한국투자개발공사, 1970년 한국증권금융 등을 거치며 자본시장의 형성과 발전을 중심부에서 고스란히 경험했다. 대우증권에 발을 들인 것은 대우그룹이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을 인수한 1973년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경기고·연세대 동기동창이었던 김 전 사장은 업무부장(영업부장)으로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이사, 전무, 부사장 등을 지내며 경영수업을 착실히 마친 그는 1984년 이 회사가 삼보증권을 합병하면서 사장 자리에 앉았다.

◇ 다혈질 성격에 ‘김핏대’ 별명…직원 경조사는 일일이 챙겨= 많은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은 김 사장을 대우증권의 전성기를 만든 인물로 기억한다. 경영자로서 김 전 사장은 거래소 신입직원 시절 과묵했던 성격과 달랐다. 자신의 질문에 직원들이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꾸짖어 ‘김핏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적인 영역 외에서는 직원들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는 등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대우증권 후배들은 회상한다.

김 전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다양한 변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 재임 첫해인 1984년에 증권업계 최초로 동경과 뉴욕에 해외사무소를 설립하며 적극적인 해외진출에 나선 것은 김 전 사장의 추진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태동한 지 채 30년이 되지 않은 국내 자본시장이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할 때였다. 국내 증권사는커녕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조차도 생소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설립해 글로벌자본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 물꼬를 트는 시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벌어들인 돈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여의도 이전, 과천 전산센터 건립 등 미래를 위한 투자는 김우중 전 회장의 전적인 신뢰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투자는 경제 호황을 타고 성과가 돼 되돌아왔다. 대우증권이 1990년대 들어 2,3위가 넘보기 어려운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자들이 하지 못했던 투자가 시차를 두고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장기적인 비전과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인재양성도 김 전 사장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일례로 증권업계 원로인 강창희 트러스톤운용 연금대표가 대우증권에 재직 중이었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직원이었던 강 대표가 공부를 위해 1년 휴직을 신청했더니 김 전 사장이 “월급을 줄 테니 파견 나가는 형식으로 하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강 대표뿐 아니라 많은 직원이 이 같은 배려로 공부할 수 있었다.

국내 최초 민간 경제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증권업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를 통해 국내에 ‘애널리스트’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김 전 사장이었다. 전성기 시절 대우경제연구소는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플레이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당시 대우증권을 통해 배출된 많은 인재는 증권업계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CEO로 진출하자 대우증권은 ‘증권사관학교’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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