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본시장의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의 자본시장국장 임기가 단명하면서 졸속 정책과 입법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본시장국장이 고위 공직자로 올라가려고 단순히 거치는 자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임 자본시장국장인 김학수 국장은 지난해 5월 첫 공모를 통해 선임됐다. 그러나 김 전 국장은 올해 2월 국방대로 파견 가면서 9개월밖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다. 김용범 사무처장(9개월)과 서태종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8개월) 모두 재직 기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 이현철 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2014년 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1년 4개월 동안 재직한 것이 2010년 이후 유일하게 1년을 넘긴 사례다.
이처럼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의 임기가 단명하면서 정책의 연속성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시행 한 달을 앞두고 은행권에 전면 허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는 애초 증권사에만 ISA를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을 한 달 앞둔 지난 3월 은행권에도 ISA를 인가했다. 당시는 김태현 자본시장국장이 취임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기다. 이 때문에 증권가의 반발이 컸을 뿐 아니라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은행권에서는 직접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임형 ISA를 급하게 만드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 재산 늘리기라는 큰 명분 때문에 정책적 실패가 숨겨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사에 헤지펀드를 허용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금융위는 작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증권사에 헤지펀드를 허용하기로 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를 대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반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구체적인 메뉴얼이 나오지 않으면서 업계는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금융위가 모범규준을 사실상 새로운 규제처럼 운영하는 것도 업계의 큰 불만이다. 금융위가 모범규준을 행정 규제처럼 운영하면서 ‘옥상옥’과 같은 법령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위의 답보 된 인사와 무관치 않다. 고위 공무원의 인사가 적체된 상황이고 자리도 한정돼 있다 보니 사실상 ‘돌려막기’식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자본시장의 중요 정책은 ‘사무관이 혼자 만든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결국 정부부처는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힘이 생긴다”며 “이 때문에 금융위가 겉으로는 규제를 풀지만 안에서는 되레 규제를 늘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지수의 모건스탠리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편입과 관련해서도 금융위는 식물 부처와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한국 증시지수의 MSCI 편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 TF에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참여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자본시장국장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정책의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MSCI 편입을 위해서는 원화의 환전성을 개선해야 하지만 해당 정책은 기획재정부가 대부분 권한을 가지고 있어 금융위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돌려막기 식 인사를 하는 금융위에서는 정책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