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들은 오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장시간을 기다렸지만 싫은 내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침내 순번이 돌아오자 사인 받을 물건을 꺼내 선수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려는 사람도 있다. 특이한 건 사인을 받기 위해선 모금함에 임의의 성금을 기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선 사인회다.
예정에 없던 자선 사인회는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마련된 이벤트였다. JGTO와 재팬골프투어 선수회가 대회 기간 중 긴급회의를 열어 이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주말·휴일을 맞아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들을 위해 사인회를 열고, 모인 성금을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를 위해 기부하겠다는 취지다. 사인회에는 이번 대회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시카와 료(25)도 동참, 대회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JGTO와 선수회의 순발력 있는 대처는 흥행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자 투어에 한 줄기 희망을 쏘아 올렸다. JGTO는 벌써 수년째 흥행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와 비교해 대회 수는 물론 상금 규모, 갤러리 수까지 크게 뒤져 있다. 스타 부재도 원인이지만 여자 대회에 비해 볼거리가 없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JGTO와 선수회는 투어 흥행을 위해 선수 개개인의 경기력 향상은 물론 골프팬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은 일본 본토 개막전엔 나흘간 1만7426명의 (유료)입장객이 대회장을 다녀갔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수치다. 대회 기간 내내 궂은 날씨였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지만 흥행 부진으로 인한 JGTO의 고민은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JGTO와 선수회의 순발력 있는 대처는 흥행 부진 대회를 울림이 있는 대회로 치러냈다. 갤러리는 본선에 오른 61명의 선수 전원과 이시카와의 사인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출전 선수 전원이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JGTO와 선수회의 결정에 적극 동참한 결과다. 스타 선수일수록 사인 시간이 길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 한 명까지 사인을 마친 뒤에야 휴식에 들어갔다.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 돕기’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예전에 없던 동지애마저 피어났다.
단지 선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장시간을 기다린 건 아니었을 터다. JGTO는 좀 더 쉬운 방법으로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를 돕는 방법을 제공했고, 갤러리는 그에 동참했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그 뜨거운 현장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까지 사인을 잊지 않은 선수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하모니였다. 개막을 사흘 앞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가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