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0년대 중반 미국 워싱턴D.C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농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의회나 행정부가 농업 부문에 기울이는 각별한 관심을 인식했다. 대통령 후보자의 농업 분야 공약이나 농민단체의 지지 여부가 당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곡물이나 축산단체의 영향력이 매우 커 정부가 농축산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주의 크기에 관계없이 주마다 2명씩 상원의원을 뽑게 한 것도 지역 농업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1862년 농무부를 창설하고 ‘국민의 부처(People’s Department)’라고 불렀다. 전 국민을 위한 부처로서 역할을 다하라는 뜻이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 ‘50년사 연대기표’를 설치했다. 공사의 역사, 나아가 우리 농업정책의 역사를 제대로 알자는 의미에서다. 공사는 농업인 소득증대와 농공 간 격차완화를 위해 1967년 농어촌개발공사로 발족했다. 당시에는 사장이 아니라 ‘총재’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중요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86년 농수산물유통공사로, 2012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뀐 사명만 봐도 개발에서 유통, 최근에는 식품산업, 수출증진 등으로 농업정책의 주요 과제가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농산물 보호장벽이 사라지면서 농업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이 크게 변화했다. 농업과 농촌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농업의 역할과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농업은 1·2·3차 산업이 융복합된 6차산업으로 변모하고 있고 선진국들도 농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는다. 과거 사양산업으로 간주되던 양잠산업이 인공 고막이나 인공뼈 개발까지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벌침을 이용한 화장품, 유해가스가 나오지 않는 옥수수 바이오에너지 등 과거 먹을거리 중심의 농업시대에서는 별 가치가 없던 농업자원이 기술혁신을 통해 첨단산물로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농업 분야에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개발의 성과물이 많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통일벼 개발이다. 1개의 자포니카 품종과 2개의 인디카 품종을 교배시킨 3원 교배는 과거 시도되지 않던 창조적 육종방법이었다. 통일벼 개발로 쌀 생산이 획기적으로 증대되면서 우리나라는 오랜 보릿고개에서 해방됐다. 식량자급은 1970년대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해외에서도 우리의 농업기술을 배우고자 하나, 정작 우리는 농업을 힘들고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으로 간주한다. 우리 농업의 과거를 잘 모르니 미래 가능성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역사의 중요성은 국사, 세계사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농업 분야에도 중요하다. 기후변화, 식량위기, 개방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농업의 어제와 오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허기를 채우는 과거의 ‘먹는 농업’에서 벗어나 미래 후손들의 먹거리인 ‘신소재농업, 기능성농업, 치료농업, 관광농업, 생태농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농업 역사에 관심을 갖자. 새로운 미래 농업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