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쌀쌀한 강바람에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여의도 서울마리나로 향했다. 쌍용의 신차 티볼리 에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시승에 앞서 상품 설명을 맡은 담당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신차 출시엔 외관만 살짝 바꾸는데도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티볼리의 성공으로 불과 1년 만에 뚝딱 신차를 내놨다는 주변의 핀잔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다.
하지만 쌍용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다. 담당자가 밝힌 2년이란 시간은 신차 개발의 최소 단위가 맞다. 전작인 티볼리의 개발 기간만 해도 3년 5개월이 소요됐으니까.
‘급조된 차’ 논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왜 롱바디 모델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차례다. 티볼리 에어는 SUV지만 웨건을 벤치마킹했다. 지상고 차이가 있을 뿐 전장은 승용차 웨건 모델과 비슷하다고. 참고로 7세대 골프 바리안트, CLA 슈팅브레이크, 올로드콰트로를 벤치마킹했는데 티볼리 에어 역시 이와 비슷한 크기다.
비교 대상이 다르다 보니 플랫폼을 판가름하기 위한 기준 역시 애매모호한 편이다. 국내에선 준중형 SUV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벤치마킹 한 차량의 영향인지 유럽에서는 컴팩트 SUV에 속한다고.
덩치를 키웠으니 체중이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 티볼리 에어의 무게는 티볼리에 비해 50kg 늘어났고 전장은 245mm 길어졌다. 대신 늘어난 덩치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제동에 신경을 썼다. 100km/h에서 제동거리는 티볼리가 42.4m, 티볼리 에어가 42.5m로 오차 범위 정도의 차이다.
티볼리와 티볼리 에어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흔적은 비단 브레이크뿐만이 아니다. 주행, 핸들링, 드라이빙 성능은 기존 티볼리 숏바디에 근접하도록 맞췄다. 최고속도 역시 두 모델 모두 약 172km/h 수준에 머무른다.
엔진 역시 같다. 유로6 ‘e-XDi160’ 디젤 엔진은 티볼리 에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최대출력 115마력, 최대토크 30.6kg.m의 힘을 낸다. 일반적인 도로 주행 환경에서 주로 쓰이는 1500rpm~2500rpm 구간에서 최대토크를 뽑아내는 세팅이다. 변속기는 아이신 사의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리터당 연비는 15.3km(2WD A/T 기준).
이제 시동을 걸고 본격적인 시승에 나설 차례다. 이번 시승회 컨셉이 ‘설렘이 있는 장소인 공항에 가족, 친구, 연인을 위한 픽업을 가는 기분’이라고 한다. 자동차로 공항 픽업을 가본 적이 너무 오래 전이라 옛 추억을 곱씹어 가며 차에 올랐다.
시승 코스는 서울마리나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을 경유하고, 인천그랜드하얏트에서 잠깐 휴식 후 다시 서울마리나로 돌아오는 코스. 편도 54km 거리다.
‘이제부턴 진짜 시승 이야기다’라고 메모를 하고 차에 오르는 순간… 아, 일단 인천 가는 길은 동승이다. 매체 시승은 2인 1조로 구성하는 데 같은 조에 배정된 기자가 먼저 운전을 하기로 했다. 적응도 하고 잠시 쉴 요량으로 흔쾌히 키를 건넸다.
운전대를 잡은 기자는 나처럼 남자와 말을 잘 못 섞는 성격인 것 같다. 시승차 안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사람 소리는 컬투쇼 라디오 밖에 없었다. 다행이다. 에디터도 그런데… 그와 시승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는 딱 두 마디 정도 뿐이다. “먼저 (시승)하실래요?” 그리고 “영수증(신공항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건네며) 받아야 해요.”였다… 하아… 나란 남자.
차는 이내 올림픽 도로에 합류한다. 창문을 닫아야지. 그런데 아차! 조수석의 파워윈도우가 오토가 아니다. 바람이 차서 창문을 닫고 싶다고? 미안해 자기야. 계속 꾹 당겨..
보조석 차별은 시트에서도 계속된다. 운전석은 온열, 통풍이 다 되는 반면. 조수석은 엉따(!)만 된다. 그래 원래 여자는 찬데 앉으면 안되니까…라는 것까지 고민한 미장센이라면 박수 짝짝짝!
내장 소재는 흥미롭다. 적어도 에디터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일반적인 부분은 차량 가격을 고려해 플라스틱, 도어캐치나 스위치를 둘러싼 부분은 카본룩(?) 천을 덧댔다. 그리고 암레스트 중에서 팔꿈치가 닿는 부분은 쿠션를 넣은 가죽을 썼다. 원가 절감의 흔적이라고 폄훼하고 싶진 않다. 티볼리처럼 티볼리 에어도 차량 가격이 충분히 수긍할만한 영역에 머물러 있으니까.
이제 신공항 고속도로에 차가 진입했다. 사실 쇼퍼드리븐을 느끼며 2열 시트 폴딩을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초면에 뒷자리에 앉겠다는 소리는 도저히 못하겠더라. 그냥 아쉬운 마음에 사진 한 장 찍어봤다. 물론 흔들렸다. 차가 빨랐고 도로 도면 상태가 좋지 않아서다. 에디터의 카메라가 안 좋거나 에디터가 수전증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묵언수행 중인 운전석의 드라이버는 신공항 고속도로에 진입과 동시에 레이서로 돌변했다. 얼굴 하나 안 변하고 저렇게 빨리 달리다니 분명 돌부처가 틀림없다. 꽤나 빠른 템포로 주행하며 차선 변경을 해봤지만 스포티함보단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진 차라는 건 금새 느낄 수 있었다.
가속력 또한 마찬가지. ‘평이하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폭발적인 것을 웨건과 길이가 같은 SUV에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젊은층을 공략하기엔 다소 심심한 주행 패턴을 지녔다는 것.
반면에 시트의 경우 안락함과 스포티함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시트는 폭신한 반면에 등받이 좌우 옆구리를 받쳐주는 사이드볼스터는 딱딱했으니까.
우린 검은색 19호 시승차와 혈전을 펼쳤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지붕에 아무것도 얹지 않아 고속주행에 유리했다. 하지만 우린 불리하게 루프탑 텐트를 얹었다.
잠깐의 티 브레이크가 후 이제 에디터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차례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까지 속력을 올리는 건 별다른 스트레스나 소음 없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사실 이 정도도 안되면 점점 공세를 높여가는 수입차와의 전쟁에서 버틸 경쟁력 자체가 없다고 봐야 한다.
소음 문제는 조금 크다. 사이드미러 풍절음도 발생하는 것 같았지만 지붕에 얹은 루프탑 텐트로 인한 소음이 더 클 것 같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노면 소음도 제한 속도를 넘어가면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물론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안전운전을 실천하는 준법시민이니까 그런 소음을 들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운전 중 인상적인 건 딱 한 가지. 수동 기어 변속 버튼이다. 톨게이트가 가까워져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해 보려 했는데 M으로 기어레버를 옮긴 후 상하좌우 도무지 움직이는 곳이 없다. 자세히 보니 조그만 버튼이 달려 있더라. 이 스위치로 UP/DOWN을 조절한다. 순간 자동차라기보단 비행기나 헬기 조종대를 잡은 기분이다.
이쯤에서 시승 소감을 마치려고한다. 30분 정도 운전하고 어쭙잖게 시승기를 쓴다는 것도 눈꼴사납다. 30분 만에 차에 모든 걸 파악하면 기자가 아니라 자동차 회사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에디터는 아직 그런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 했다.
아, 아쉬운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주행샷이 없다. 대신 멋지게 보정을 곁들인 보도자료 사진을 참고하자. 솔직히 안 찍었다. 빨리 달리는 차에서 창밖으로 몸을 빼고 사진을 찍는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극한직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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