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형사사건에 대한 일본 법원의 유죄선고율이 99%에 이른다는 사실을 수차 강조한다. 100명이 기소되면 99명이 유죄, 1명이 무죄가 된다는 말이다. 유럽과 미국의 60~85%와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무엇이 이 99%를 만들었을까? 일본 경찰과 검찰이 유럽과 미국의 경찰과 검찰보다 유능해서? 그래서 완벽한 수사와 기소를 하고 있어서?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법원의 무능과 비겁 그리고 매너리즘을 탓한다. 주인공이 판사를 향해 던진 항변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이 자리에서 심판받는다고 해도 이렇게 하겠는가? 당신이 심판받고 싶은 대로 나를 심판해 달라.”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4년 대검찰청 통계로 1심 99.44%, 2심 98.22%이다. 영화에서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숫자의 배경은 무엇일까? 경찰과 검찰이 유능해서? 아니면 법원의 무능과 비겁 그리고 매너리즘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함부로 비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경찰과 검찰이 그 정도로 믿을 만하고 유능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법원이 가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법부와 법원에 대한 평가는 바닥 수준이다. 다보스포럼을 개최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올해 대한민국의 사법부 독립성은 140개국 중 69위, 중국은 물론 아이보리코스트와 케냐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다. 다소 문제가 있는 지표라 하더라도 그렇다. 정말 낯이 뜨겁다.
사법부가 이러니 나라가 어지럽다. 사법 정의가 죽고 어쩌고 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국정부터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의 테러방지법만 해도 그렇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면 정보 수집이든 감청이든, 또 그것을 누가 집행하든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집행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2014년의 영장 발부율을 보자. 압수 수색에 대해서는 91.7%, 통신제한조치허가(감청)에 대해서는 91.2%,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대해서는 94.6%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ㆍ경찰ㆍ국정원 등이 요구만 하면 대부분 그대로 내주었다는 뜻이다.
영장의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때로 특정 사안이나 위치를 검색한 사람 모두에 대한 정보와 이들의 위치 정보 등을 모두 수집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국민, 특히 인터넷과 SNS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불안해하거나 기분 나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상황이 이런데도 사법부와 법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불신받는 또 하나의 기관, 국정원은 그나마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한마디 했다. 입법과정에서 나온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국민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아는 것 같다.
하지만, 사법부와 법원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남의 일이거니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해 왔다는 뜻인가? 또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면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오로지 판결과 결정으로만 말한다, 이런 건가? 지금까지의 판결과 결정들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치가 워낙 엉망이다 보니 국민의 눈길이 아직 사법부와 법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황제노역’ 등 이해할 수 없는 판결에 분노하고, 법정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분노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국민이 말하고 있다. “당신이 심판받고 싶은 대로 심판해 달라.” 그렇다. 스스로 심판받는 입장에서, 또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생각하라. 또 그런 입장에서 무엇이 잘못됐으며, 무엇을 어떻게 고쳐 국민을 안심시킬 것인지를 말하라.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