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⑤] 박봉환 전 증권감독원장

입력 2016-03-08 11:00 수정 2016-05-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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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증감원장…“건전한 증시 생태계 위해” 채찍당근 동시에

고(故) 박봉환 전 증권감독원 원장은 역대 원장 중 가장 장수한 리더다. 고(故) 홍승희 초대 원장의 뒤를 이어 증권감독원 설립 5년째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7년간 증권시장의 기틀을 잡고자 동분서주했다. 홍 원장이 허허벌판에 감독 전문기구의 토대를 세우고 기업들을 증시로 끌어들였다면 박 원장은 기업들이 건전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증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에 증시를 어지럽히던 시세조종, 내부자 거래 등 불건전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증권사 영업 범위 확대와 규제 자율화를 통해 실속을 도모했다.

◇자본시장 질서 세워라…내부자 위법행위에 ‘철퇴’ = 1982년 2월 박 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양질의 기업 자금을 적기에 공급하고 건전한 투자 풍토를 정착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내부자 거래, 시세조작 행위 등 불건전 위법행위를 강력히 단속하는 시장 관리기법을 개발하겠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이에 취임 두 달 만인 4월에 검사 업무 수행 시 문제점과 지적사항을 유형별로 수록한 검사실무편람을 발간해 지침서로 삼았다. 그해 9월에는 증시를 흔드는 악성 루머 근절을 위해 감찰반 인원을 보강했다. 증권시장 주변과 증권회사 창구에도 매월 1회 암행감찰반을 불시에 투입하고 각 증권회사에도 자체적으로 루머 단속 전담반을 편성하도록 지시했다.

이듬해에는 자본시장에서 특히 도덕성을 가져야 할 증권회사 임직원의 위법 매매거래를 단속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 박 원장은 증권업계 정화추진위원회를 열고 “증권업은 고도의 신용이 본질이기 때문에 증권사고가 전체 경제에 주는 충격이 매우 크다”며 “과거 증권산업을 보호육성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증권 부조리 척결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통장·원장 등의 허위기재 △보증금의 횡령·유용 △무인감 인출 등 당시 자주 벌어지는 증권사 관련 사고에 대해 ‘몰염치한 범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증권사고 관련자의 취업 제한 기간을 기존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며 제재를 강화했다.

그럼에도 1988년 대우증권과 증권거래소 직원 4명이 주식을 부정배분해 1억5000여만원의 차익을 취한 사건이 적발됐다. 단순 개인의 비리가 아닌 주식 매매 체결 과정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운 대형 사고였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비롯해 대부분의 증권 사고들이 증감원의 자체 적발이 아닌 고발성 투서에서 시작됐고 이후 처리 과정에서도 증감원이 조사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직 내 무력감이 커졌다.

◇증감원에 ‘실탄’을 달라…독자 노선 초읽기 = 당시 재무부(현 기재부) 장관은 증권거래법에 의거해 증권관리위원회 의결 사항을 집행 정지시킬 수 있었다. 이에 증감원의 독립성 보장 요구가 업계 내외에서 끊이지 않았다. 제도적으로 재무부의 지시·감독을 받는 상황에서는 재무부 증권보험국의 업무를 뒷받침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당시 박 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증감원과 증권관리위원회의 위상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공기총과 같다”고 말했다. 굵직한 증권 범죄가 터졌을 때도 검사권이 제한돼 있어 애로사항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에 재무부는 1988년 4월 증관위와 증감원의 기능·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증관위에 준사법권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박 원장은 그해 12월 이규성 재무부 장관 취임 직후 직접 찾아가 “증감원에 실탄이 가득 찬 총을 달라”고 요구했다.

박 원장의 퇴임을 앞둔 1989년 재무 당국은 증감원에 준사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증권사 먹거리 늘어야 증시도 산다…채찍과 당근 동시에 = 박 원장이 자본시장에 채찍만 가한 것은 아니었다. 건전한 방식이라면 얼마든지 증권사들이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영업 자율성도 확대시켰다.

1983년 증권사에 신탁형 저축업무를 허용해 증권회사에 고객의 현금을 유입시켰고 장외시장 활성화 정책도 펼쳤다. 또한 상장기업의 유상증자 시 공모증자와 시가발행제를 도입해 자금조달 흥행을 도모했다.

유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관투자가 범주를 연금공단과 각종 기금으로 확대시키기도 했다. 금융기관은 요구불예금의 25%, 보험회사는 총 자산의 40%로 규정된 상환 한도 수준으로 기관투자가가 증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권장했다.

기업 IPO가 1977년 49개사, 1978년 33개사를 고비로 1980년 이후 1~2개 수준에 머물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자 우량기업 IPO에도 박차를 가했다. 박 원장은 당시 상장 규모가 425억원 수준으로 증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현대건설 상장을 성사시키고자 이명박 사장과 정주영 그룹 회장과 긴밀히 소통했다.

1980년대 후반 규제 자율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증감원도 장벽 낮추기에 적극 나섰다. 증권사 위탁수수료와 인수수수료를 자율화해 업계를 경쟁시장으로 탈바꿈시켰고 상장법인과 증자에 관련한 불필요한 사전 신고절차를 대폭 축소하는 등 69건의 규제를 완화했다.

자율화 바람은 증감원 내에도 스며들어 박 원장 재임 중인 1988년에 증감원 노조가 설립되기도 했다.

일 처리에 빈틈이 없는 소신파라는 평가를 받는 박 원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도 유명하다. 전 대법원장 김병로의 손녀사위이자 김종인 건국대 석좌교수와 처남ㆍ매형지간이다. 1989년 2월 증감원 퇴임 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동아그룹 고문을 역임했다. 향년 67세인 2000년 12월 29일 병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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