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입력 2016-03-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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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기획취재팀장

나는 교복 세대가 아니다. 1983년 교복 자율화가 시행됐다. 이후 학교장 재량에 따라 교복을 채택하는 학교들이 늘어났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1989년 느닷없이 “내년부터 교복을 입도록 하겠지만 이전 입학생들은 자유 의사에 따른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행운이었다.

행운이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diversity) 말살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개성 따위는 필요없다는 사고의 경직성이 싫었다. 사복을 입을 경우 빈부 격차가 드러날 뿐더러 탈선 가능성도 있다며 교복이 재도입되었는데 그 이유 또한 동의하기 어려웠다.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가 대거 등장했던 시절이었다.

다시 교복 시대다. 그런데 이제는 교복 브랜드가 유명 아이돌 스타를 모델로 쓰고 디자인에 신경쓰며 고가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 부담이 되어 오히려 교복 자율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한다. 그런데 그 해법이라고 나온 아이디어가 나를 아연하게 했다. 정부가 교복 디자인을 10~20개 정도 두어 이 안에서 채택하게 하는 교복표준 디자인 제도 시행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 공간은 바로 난리가 났다. 두발 단속이나 통행 금지도 부활하라는 비아냥이 많았지만 “이렇게 문제가 많다면 교복 제도를 없애는 것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차분한 견해도 제시됐는데, 규제를 규제로 풀려는 정부 당국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규제와 강요가 지배했던 학창 시절 기억이 되살아났다. 잡곡을 넣은 밥을 도시락으로 싸오지 않으면 혼이 났던 ‘혼식 장려(사실상 강요)’라든지 외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애국하는 것이라며 옷에 영어 글씨가 써 있다고 계도를 받아야 했던 시절을 보냈다. 빠지면 벌을 받는데도 ‘자율학습’이란 명분으로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했던 것도 개인적으로는 폭력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펴낸 똑같은 역사 교과서로 공부해야 하게 된 것도 다양성 말살의 일례가 아닐는지. 역사는 기술하는 자, 권력을 쥔 자의 이해에 따라 완전히 다를 수 있는데 말이다. 창의성이 발현될 수 없는 환경에서 스티브 잡스가 나오길 바라는 우(愚)를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인종이나 성별 등에 대한 다양성 존중의 문화도 자리잡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양한 인종, 민족이 모여 그래도 조화롭게 산다고 샐러드볼(Salad bowl) 같다 하는 미국도 속을 들여다보면 얽힌 갈등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혁신의 상징인 실리콘 밸리에서도 우리나라와 인도 등 동양의 인재들이 반짝거린다고 하지만 경영진으로 올라갈수록 ‘백인 남성’만 우글우글하다. 그걸 벗어나 보려고 트위터, 애플 등에선 다양성 책임자(Diversity Chief)를 부러 두고 있다.

백인들만의 잔치로 비판받는 아카데미 시상식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시상식 진행자는 동성애자인 닐 패트릭 해리스가 맡았고,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패트리샤 아퀘트가 여성·소수자 인권을 강조한 소감을 말하자 메릴 스트립 등 여배우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모두 백인인 심사위원들이 과연 아랍 등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모든 문화를 관통하는 인간성이 핵심이며 우리는 원래 모두 아프리카 태생이 아닌가”라고 발언했다가 심사위원단이 백인인 것을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자신은 인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에서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LGBT) 등 성 소수자들의 권리는 점점 옹호되는 편이다. 지난해 6월 미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헌 판결한 일은 그야말로 역사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동성결혼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존재가 경쟁하기도 하며 어울릴수록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갈라진 남과 북은 통일되는 것이 옳은 방향이겠지만 다양한 삶과 문화가 통일되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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