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위기의 한국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

입력 2016-03-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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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세계중소기업학회 회장, 조지워싱턴대 초빙교수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위기를 맞았다. 모두가 한국이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새로운 희망을 본다. 위기란 변화의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축적된 에너지는 위기 때마다 대변신의 기회가 되었다. 한국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기업 영웅들이 만들어졌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개성공단 내 봉제공장이 정상적인 물량 공급이 어려워졌을 때 골덴샤인의 서원호 대표는 미얀마의 봉제공장을 통해 성공의 기회를 만들었다. 1998년 IMF의 위기로 캄보디아에 진출한 강남식 회장은 기업가 정신으로 봉제공장을 성공적으로 키워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삼성전자 유영복 과장은 뉴델리 인근 인도 공장에 파견되었다. 그는 위기의 상황에서 변화의 결심을 하게 된다. 지저분한 인도에서 가장 깨끗한 공장을, 느린 인도에서 가장 빠른 공장을,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카스트제도 문화에서 직접 일하는 공장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것이 CSA(clean·speed·action) 캠페인이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컬러TV를 1인당 100대씩 생산하는 인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해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필수 견학 코스가 되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는 2가지가 없다. 뱃멀미와 물고기가 없다. 왜냐하면 3000여개의 섬 때문에 파도가 없고 파도가 없어 뱃멀미도 없고 물에 산소 공급이 어려워 물고기가 살기 어렵다. 이처럼 적절한 교란은 오히려 생태계를 건강하게 한다. 중간교란가설(intermediate disturbance hypothesis)이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을 2개 꼽으라면 하나는 1997년 IMF 경제 위기이고 또 하나는 2008년 세계금융 위기다. 1997년 위기는 한국을 아날로그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아날로그 산업을 고집했던 일본 기업들을 앞지르는 기회가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한국 기업을 모방 성장에서 연구·개발하는 전환기를 만들었고 미국 의존적 경제구조에서 신흥 브릭스(BRIC) 시장을 개척하는 시장 변신의 기회가 되었다. 이것이 현대자동차를 급성장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해외 언론에서는 이를 현대차의 보물찾기(treasure hunting) 성공이라 불렀다.

또한 연구개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마침 택지 개발을 끝낸 판교 테크노밸리가 수도권의 고급인력을 R&D인력으로 활용하는 무대가 되었다. 많은 연구센터가 만들어지고 기술벤처기업들이 글로벌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2014년 말 판교 1002개 기업이 한 해 동안 70조원을 벌어들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과거의 위기 극복의 주인공들은 모두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이야기이다. 우리 경제의 핵심 주체인 중소기업이 빠져 있다. 중소기업들은 이 기간에도 역량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이나 글로벌 기회 발굴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리스크가 크고 사업하기 어려운 해외시장보다 내수시장에 몰입하는 이른바 ‘갈라파고스’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었다. 매출액에서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은 지난 10년간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지고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이른바 10년 주기의 새로운 위기가 오고 있다. 내수시장은 정체되고 있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한계기업으로 몰리고 있다. 위기에는 평상시 안 보이던 문제가 보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알 수 있는 진실의 순간(Truth of Momentum)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의 진정한 문제는 글로벌화 부족의 갈라파고스화이다. 위기란 변화의 에너지가 집적되어 변신과 실행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오랜 기간 내수시장에만 머물렀던 중소기업이 이번 위기를 통해 해외시장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Change’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가 된다.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만들어내면 새로운 희망이 만들어진다.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위기의 경제를 구출하는 대한민국의 정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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