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피크는 참 독특한 브랜드다. 보통은 브랜드의 성향에 따라 같은 군으로 묶이고 그 안에서 경쟁사가 생기기 마련인데, 스노우피크에겐 그런 게 없다. 한눈 팔거나 옆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곳. 게다가, 가격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필요에 의해 만들었으니 수지타산까지 일일이 신경 써가며 만들 이유는 없었을거다. 그리고 가끔 스노우피크는 우리에게 이상한 마법을 건다.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스노우피크가 만든 물건을 본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제품이 나한테 꼭 필요했었다는 것을. 마치 뭔가에 홀린듯이 말이다.
이런 스노우피크가 어패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4년부터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2015년에는 아예 속이 꽉 찬 컬렉션을 내놨다. 지난 2월 17일 스노우피크 본사에서 열린 2016 F/W 수주회를 다녀온 후, 나는 또다시 이 요망한 브랜드에게 홀리고 말았다.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던 아웃도어 브랜드의 의류가 갖고 싶어진 것이다. 그것도 몽땅.
F/W 컬렉션 역시 2016년 S/S시즌의 ’홈 & 텐트’의 컨셉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출근해도 될 정도로 모던한 디자인에 카본, 케브라 등 특수소재를 적용해 언제 어디에서나 자연으로 훌쩍 떠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교감하고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야말로 바로 홈 & 텐트의 골자다.
일본 의류 사업부 본부장 야마이 리사(Yamai Lisa)는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캠퍼이자 디자이너다. 스노우피크가 만든 텐트가 자연 속에서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캠핑 환경을 지향하듯, 아웃도어 의류도 언제 어디서든 대자연 속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서바이벌 참가자도 아니건만, 언제나 최소한의 장비로 최고의 효율성만을 추구했던 다른 제품과는 분명 지향점이 다르다. 환경의 제약없이 자연 속에서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스노우피크 어패럴이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인 것.
이번 컬렉션은 트랜짓(transit), 캠프(camp), 드웰(dwell), 스탠다드(standard), 트래블(travel) 다섯 가지로 나뉜다. 트랜짓은 스노우피크의 핵심 라인 중 하나다. ‘transit’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면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통과, 환승’이란 뜻. 일상과 캠핑을 넘나들며 어떤 순간에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데 중점을 둔 라인업. 그 밖에도 캠핑할 때 ‘불빵’을 방지하기 위해 방염 소재를 사용한 캠프라인, 릴랙스 웨어로 피부에 직접 닿는 옷인 만큼 울, 캐시미어 등 최상급의 원단을 사용한 드웰까지. 자연을 제어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카테고리를 나눴다. 흔히 계절에 따라 카테고리를 전개하는 것과는 또 다른 행보다.
확고한 신념과 자신들이 만들어낸 물건에 대해 분명한 목적을 가진 브랜드를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이번 컬렉션을 보면서 스노우피크는 장비 뿐만 아니라 의류 역시 자신들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은 어패럴 분야에서 이제 막 발걸음을 떼는 단계긴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또 어떤 제품으로 나를 홀리게 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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