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30년 유성(流星), 청소년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

입력 2016-02-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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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창작뮤지컬 프로듀서

1986년 극단 ‘연희단 거리패’는 창단 첫 공연으로 극단의 정체성을 선언하듯 ‘김석출의 동해안 별신굿’을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초청 기획하였다. 당시 창단 멤버였던 나는 생애 첫 공연 기획을 그렇게 경험했다.

그런데 그 공연보다 더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기억은 그때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동시에 공연되었던 청소년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의 폭발적인 인기다. 부산시민회관의 광장과 계단을 완전히 점령한 여학생들이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학생이었던 풋풋한 배우 최민수, 허준호, 주원성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녀 우리 기획 공연장인 소극장으로 오는 길을 막아버렸던 기억, 그래서 에너지와 열정이 뜨겁기로 소문난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 대표가 그 세 청년을 향해 남의 공연 방해한다며 이단옆차기를 날렸던 기억은 지금도 다큐멘터리 영화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그 장면은 한국 공연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30년 전, 부산지역에서 그렇게 서럽게 시작되었던 극단 연희단 거리패는 지금 한국 최고의 레퍼토리 극단으로 건재하고 이윤택 연출가는 한국 현대 연극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는 동랑청소년극단의 창작뮤지컬 ‘방황하는 별들’이다. 1980년대 한국 연극계의 거장이었던 윤대성 극작가와 김우옥 연출가가 호흡을 이루고 한국 연극의 산실인 드라마센터(서울예대)가 제작한 뮤지컬이란 점,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고 들여와 연극 제작방식으로 막무가내로 공연했던 그 시절에 창작뮤지컬을 제작해 이례적인 흥행에 대성공한 점, 공연으로서는 최초로 오빠부대를 만들며 최초의 뮤지컬 스타를 잉태하고 열광하던 여학생 관객들을 지금의 뮤지컬 종사자나 뮤지컬 마니아로 배출한 점, 대학교에서 학생 실습 공연으로 만든 뮤지컬이 전국 대극장 순회공연 매진 행렬에 ‘불타는 별들’, ‘꿈꾸는 별들’ 등의 연이은 시리즈물로 기성 시장에 흥행 시리즈 기록을 남긴 점 등 ‘방황하는 별들’은 뮤지컬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았던 80년대 중반에 한국 창작뮤지컬의 성공적 선례를 화려하게 남긴 유성(流星)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고등학교의 실습 공연으로 꾸준히 공연되고 이후로도 몇 차례 제작되어 정성화, 조승우 등 뮤지컬 스타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최근에 청소년 뮤지컬을 표방한 창작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 ‘바람직한 청소년’을 인상적으로 관람했다. 두 작품 다 한국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자살, 퇴학 등 극단적인 소재를 다뤘다. 보면서 현실은 어쩌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직접적이고 교훈적인 접근이 청소년들에게 자칫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작품이 청소년 문제를 다룬 청소년 뮤지컬임에도 관객 호응을 얻으며 지속적인 공연이 가능한 뮤지컬 상품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는 것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흔히, 공연 시장을 일반 공연, 어린이 공연, 가족 공연 등으로 분류한다. 동랑청소년극단의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 이후 더 이상 청소년 극단을 표방한 단체도, 청소년 뮤지컬을 레퍼토리로 제작하는 움직임도 없다. 그런데 예체능 과목이 사라져 가는 한국 중등교육기관에서 최근에 학생들의 정서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 프로그램으로 뮤지컬 공연을 만들고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옛 ‘방황하는 별들’처럼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열광하는 새로운 청소년 뮤지컬이 필요한 시점이다.

입시지옥을 성장의 기반으로 사는 처연한 한국의 청소년들이야말로 문화예술적인 체험으로 한창 섬세하고 격동적인 성장호르몬에 내적인 영양 공급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로 꼭 30년을 맞는 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의 신화를 되새겨 보게 된다. 미래 우리 사회의 별인 청소년들이 청소년 시절에 본 한 편의 뮤지컬로 인생의 나침반이든지 정서적인 위로든지 새로운 도전의 계기든지 취미의 발견이든지 무엇이든지 희망적인 동력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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