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 경선 두 번째 관문이었던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졌다. 뉴햄프셔 주가 워낙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표밭이기도 했지만 문제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안전하게 얻을 것으로 생각했던 여성표를 대거 놓쳤다는데 있다.
첫 대결이었던 지난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선 클린턴 전 장관이 샌더스 의원에 비해 여성표를 11%포인트 차로 더 많이 가져갔지만 9일 열린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선 반대로 11%p 덜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더 깊이 들어가면 ‘젊은 여성들’의 표가 대거 샌더스 의원에게 갔다. 클린턴 전 장관은 65세 이상인 여성들에게서는 샌더스 의원에 비해 19%p 표를 더 얻었지만 18~29세,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여성들에게선 득표 차이가 무려 59%p나 되게 졌다.
스타이넘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들이란 ‘젊은 남성들은 어디 있지?’만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 젊은 남성들은 다 샌더스 의원 쪽에 가 있다(그러니 젊은 여성들도 따라간 것이란 의미).”고 발언, 젊은 여성들을 무뇌아 취급해 맹비난을 받았다.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더 심했다. 이튿날 그는 “샌더스 의원에게 표를 주려는 여성들은 정치적인 혁명을 도모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우리(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여성들)가 사다리를 어떻게 타고 올라갔는지 얘기해 줄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은 그게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를 돕지 않으려는(남성인 샌더스 의원을 뽑으려는) 여성들을 위해선 지옥에 특별한 자리가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제반의 상황을 두고 클린턴 전 장관의 출마가 여성들간의 세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고 16일 분석했다. 그 세대 차이란 여성의 존재 자체가 존중받지 못했던 시절 여권 신장 운동을 했던, 이제는 ‘나이 든 페미니스트’들과, 전복과 혁명을 외치지 않아도 남성과 여성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차이일 것이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이뤄야 할 목표가 같을 수가 없다. 이렇게 다른 세대를 그저 ‘여성’으로만 묶어서 생각해 자연스레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클린턴 캠프의 큰 오산이다.
젊은 여성들의 고민은 과거와 다르다. 쌓여있는 학자금 대출, 확 늘어나지 않는 일자리, 그리고 동성애자 권리 확보 등 과거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젊은이’이기에 해야하는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스타이넘과 올브라이트 시대에는 너무도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와의 갈등,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문제였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이 든 페미니스트’ 그룹은 “너무나 오래 기다려왔다. 이제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젊은 여성들은 현재의 경제ㆍ사회적 문제를 누가 더 잘 풀어줄 수 있을 지를 가늠하며 표를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성 차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은 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지난 2000년 엘리자베스 돌 당시 상원의원이 여성 최초로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설 것을 고심하던 시기(실제로는 나서지 않았다) 갤럽 조사에선 “백악관 주인이 여성이 될 수 있다.”고 본 응답자가 전체의 92%에 달했다. 이 설문이 처음 이뤄졌을 때인 1937년 이렇게 답한 응답자는 33%에 불과했다.
이러한 세대 차이를 분석해 젊은 여성 유권자에 대한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짜지 않고 막연하게 ‘여성이니까 여성에게 표를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기댄다면 필패일 수 있다는 걸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가 분명히 보여줬다.
페이스북에서 ‘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박상현 칼럼니스트도 이와 관련해 “클린턴 전 장관의 경우 여성과 소수인종(흑인ㆍ히스패닉), 경제적 약자 등에게서 표를 꼭 얻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 이를 ‘힐러리 클린턴의 방화벽(fire wall)’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경제적 약자의 경우 샌더스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여성 표까지도 잃고 있다.”면서 “지금 젊은이들의 표는 남녀 구분이 없다. 젊은 여성들은 포스트(Post) 여권운동 세대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칼럼니스트는 “네바다 주에서 소수인종마저도 클린턴 전 장관 편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 명징한 메시지가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독설로 유명한 NYT의 여성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 역시 기회될 때마다 독설이다. “젊은 여성들은 매우 다른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데 맘대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걸 싫어한다.”면서 “샌더스는 허황될 지언정 명확하며 ‘우리(we)’가 주체가 되는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클린턴 전 장관은 ‘나(I)’를 주체로 하는 메시지를 갖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비난했다.
다우드의 말처럼 ‘나는 남편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었고’ ‘잘못 이해되고 있고’ ‘이번은 내 기회’라고만 외친다면 클린턴 전 장관이 스스로 백악관에 들어가는 길은 점점 더 험난해지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시대도 변했고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할 바도 변했으며 어쩌면 선거공학도 바뀌고 있다. 네바다 주 코커스는 코앞인 오는 20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