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가장 큰 업적은 백열전구를 개선하고 그 생산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발명품은 영화촬영기, 영사기였다. 1847년 2월 11일 태어나 1931년 10월 18일 사망할 때까지 그는 특허 수 1000종이 넘는 발명을 해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입학 3개월 만에 퇴학당하고, 교사였던 어머니한테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 아동이었다.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키려 한 일화는 발명왕의 ‘싹수’를 알려준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 열두 살 때부터 철도에서 신문을 팔며 화물차 안 실험실에서 실험에 열중했다. 첫 발명품은 1868년 전기 투표기록기였지만 별로 쓸모가 없자 에디슨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발명하는 데 집중했다. 이어 전업 발명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1870년 전신 장비 공장을 차렸지만 재미는 보지 못했다.
그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이다. 원래는 월간 ‘하퍼스’의 기자와 인터뷰(1932년 9월호)를 할 때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바꿔 보도했다고 한다. “천재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재능 있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과 통한다.
에디슨은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내 여덟 살 연하의 아내와는 원만하지 못했다. 유머러스한 글로 유명한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1951~ )은 ‘발칙한 영어 산책’(원제 ‘Made in America’)에서 그의 성격엔 흠이 많았다고 썼다. 경쟁자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했고, 남의 발명을 가로채거나 조수들을 심하게 닦달했다. 자신에게 이로운 법을 만들어달라며 뉴저지 의원들에게 1000달러씩 뇌물을 준 일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