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매일 세 편씩 논문이 나온다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1867.2.9~1916.12.9. 쉰 살도 못 살았지만 연구자가 많고, 그 연구자를 연구한 연구서가 나올 정도다. 한국의 한 교수는 소세키를 연구한다는 것만으로 셋방을 내줄 만큼 일본인들의 사랑이 대단하더라고 소개했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외부에 대한 저항의식, 내부에 대한 소속의식이다. 동양의 윤리와 서양의 지성을 바탕으로 인간존재와 에고이즘의 추구라는 근대적 주제를 다루었다. 일본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 2년 남짓 영국 유학을 하고 왔으나 그는 서양에 도취하지 않았다.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 하이쿠 시인이며 동경대 동창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1867~1902)가 소세키라고 지어줬다.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를 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억지 고집을 부린다는 뜻이니 소세키의 반골 기질을 살린 셈이다.
소세키는 처녀작이자 출세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4) ‘도련님’ ‘산시로(三四郎)’ ‘명암’ 등 많은 소설을 썼지만 하이쿠도 2000여 수를 남겼다.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이 시가 널리 알려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그대 돌아오지 못할 어느 곳으로 꽃을 보러 갔는가’가 애송됐다. ‘양귀비’라는 소설을 쓸 때 총리가 문인 만찬 초대장을 보내자 ‘소쩍새가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 없다’는 하이쿠로 거절하기도 했다.
소세키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천 엔짜리 지폐 인물이었다. 지금은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일본은 나쓰메 소세키, 중국은 루쉰(魯迅)을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친다. 우리는? 이광수라고 말하고 싶지만 친일의 그늘이 짙다. 안타까운 일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