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가계부채가 늘어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반면 이 기간 동안 가계소득은 경기부진으로 더디게 개선됐다. 그만큼 우리나라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더 악화되고 있다. 즉 2014년 말 현재 164.2%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32.5%를 크게 웃돌았다. 이와 같이 한국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총량 규모가 크다는 것 외에도, 늘어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 있다.
이러한 속도로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날 경우 또 다른 경제위기가 초래될 우려가 없지 않다. 1997년 우리나라가 겪은 경제위기는 결국 빚이 과도해, 특히 기업의 빚이 너무 많아서 발생하였다. 그리고 2008년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는 바로 이 가계부채, 그중에서도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의 거품이 터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다. 우리가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가계대출이 급속히 늘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전반적인 저금리 기조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리가 낮다보니 이자 지불에 대한 커다란 부담 없이 빚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금리가 인하되기 시작한 2014년 3분기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눈에 띄게 확대됐다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영업 행태도 가계 빚이 늘어나는 데 가세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주된 금융대출 방식은 거치식(据置式)이었다. 이 방식은 빚을 낸 뒤 수년 동안 원금상환에 대한 부담이 없고 이자만 상환하는 구조였기에 빚을 부추기는 유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금융기관들은 최근 금리가 낮아지면서 예대마진이 축소되고 수익도 줄어들게 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동산 담보대출을 적극 장려하게 됐다. 이에 따라 금융대출 규모가 부동산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부동산 경기 띄우기’ 정책 또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그동안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만들어졌던 각종 조치들을 완화하거나 철폐하고 아울러 주택구입 자금지원 시책까지 만들어 시행했다. 이에 부동산 경기가 꿈틀거리자 그동안 잠복돼 있던 부동산 투기심리가 곧장 되살아났다.
과거 ‘부동산 불패’의 신화에 취해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기회를 틈타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 구입에 나섰다. 더욱이 금리가 낮아 빚을 내기도 수월했다. 그 결과 일부 신규주택 분양시장에서는 과열 조짐까지 보였다.
이제 가계부채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빚을 내는 사람들이 스스로 빚에 대한 경각심을 가짐으로써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자금을 융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소위 말하는 ‘묻지마’식 투자라든가 부동산 투기를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다 쓰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 여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또한 금융기관도 여신심사 관행과 영업 행태를 바꾸어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줄이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금융기관은 여신심사 관행을 담보위주에서 상환능력 위주로 변경하는 한편, 원리금 상환방식도 이자만 갚다가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거치식에서 처음부터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방식으로 점차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출자금에 대한 금리적용 방식도 금리인상에 취약한 변동금리부 상품을 줄이는 대신 금리변동에 비교적 안정적인 고정금리부 상품을 늘려나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금융정책도 가계부채를 줄여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이 경기부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 되고 주거안정 시책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부동산 투기심리 억제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반드시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