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세 번째 육십갑자를 맞는 해인 을미년에 전진하지 못하고 과거로 퇴행하였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정치적 자유가 후퇴하였다. 한국에서 정치적 자유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경보는 외국의 언론과 프리덤 하우스와 같은 글로벌 비정부기구(NGO)로부터 나오고 있다.
정치적 자유의 핵심인 언론자유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에서 모두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국내의 주류 언론이 아니라 외국의 언론과 글로벌 언론 감시 집단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도 우리 언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증이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둘째, 전근대적인 가산주의(patrimonialism)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근대화된 부문인 정부와 정당, 기업, 대학, 교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의 민주주의가 미래로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가산주의의 핵심은 세습과 공공권력의 사유화이다. 공자가 춘추시대의 정치대란을 천하위가(天下爲家)라고 설파한 것과 같이 가산주의 정치는 지도자가 천하의 공유물인 정치와 국가를 자신과 가문의 사적인 소유물로 여기면서 세습하려 한다.
근대적 기업의 경영권이 세습되고 있고, 공공영역에 속하는 근대적 사립대학 조직도 사유물처럼 운영되고 세습되고 있으며, 근대적 종교조직인 교회에서도 사유화, 세습화가 횡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세습 정치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근대적 노동조직인 대형 노조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식에게 고용을 계승해 달라는 노동 세습을 요구하고 있다.
2015년의 키워드 중 하나인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는 한국에서 다시 부활하고 구조화되고 있는 전근대적 가산주의 현상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노동세습, 교육세습, 기업세습에서 나아가 정치세습으로 발전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형해화되어 ‘국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상실할 것이다.
셋째, 한국의 대의민주주의가 우리의 대표들에 의해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2015년 말에 교수신문이 886명의 교수에게 올해의 사자성어를 물었을 때, 압도적 다수인 524명의 교수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하였다. 혼용무도는 지식인 사회가 합의한 2015년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인 것이다. 어리석고 혼미하며 용렬하고 무능한 정치 지도자들이 무도(無道)하기까지 한 정치를 했던 해였다는 것이다. 2015년은 ‘집단적 혼군’(集團的 昏君)의 해였다.
공자가 일찍이 예기(禮記)에서 천하의 공공성과 국가의 공익을 극대화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설파했지만, 2015년에 우리의 대표들인 대통령과 정부는 물론 여야 정당 지도자들이 자신의 사익을 극대화하는 ‘자기정치’를 했고, 그 결과가 혼용무도의 정치로 나타난 것이다. 3김 시대 이후 우리의 정치는 거인 보스의 정치에서 난장이들의 정치로 변했고, 우리의 대표는 국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대의하겠다는 소명(calling)에 충실한 정치인에서 선출직을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직업’으로 여기는 ‘생계형’ 정치인으로 추락하였다.
현재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지키기 위한 공천 싸움에 몰두하고 있고, 이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혐오증, 정치적 무관심, 냉소주의를 불러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2016년에 희망은 없는가? 우리는 불가능한 조건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기획하고 기안한 에곤 바르(Egon Bahr)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Think the unthinkable)에서 2016년의 희망을 설계해야 한다. 우리는 절망에서 희망을, ‘헬조선’에서 ‘파라다이스 조선’을 상상해야 한다. 기회는 2016년 4월 총선에서 찾아올 것이다. 생계형 정치인이든 소명의식에 충실한 정치인이든 예외 없이 선거철에는 표를 가진 주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말과 요구를 경청하고, 정책으로 응답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에 4년 만에 찾아오는 총선을 이용하여 한국인들은 주권자의 지위를 회복하여 대한민국호의 조타를 직접 잡고 혼용무도의 정치인들을 퇴출시키고 진정한 민의를 대의하고, 실천하는 ‘좋은 대표들’을 선출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2016년의 총선에서 한국인들은 무도한 정치를 바로잡고, 정당과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그러한 개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소명의식에 충만한 정치인들을 대표로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21세기에 때 이르게 퇴행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를 유턴시켜 다시 전진의 길로 가도록 방향 조종을 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한다.
2016년 한국정치의 희망의 원천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이다. 한국에서 ICT 기반 민주주의는 웹2.0 시대의 ‘소셜미디어 민주주의’를 넘어 ‘빅 데이터 기반 민주주의’로 진화하고 있다. 빅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정보를 가진 시민’(informed citizens)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웹2.0 제1세대 민주주의인 소셜 미디어 민주주의하에서 시민들은 정보의 공급수요자(prosumer)가 될 수 있었으나 정치인, 정당, 정부에 대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소셜 미디어 민주주의는 다중이 정치의 공급자인 엘리트들에게 “응답하라” “점령하라”와 같은 장외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공급’하고 저항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거리의 의회’(street parliament)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웹2.0 제2세대 민주주의인 빅 데이터 기반 민주주의는 소셜 미디어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해주고 있다. 빅 데이터는 엄청나게 크고 다양한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정치인, 정당, 시민들에게 동시에 공급해주고, 체계적으로 분석해주고 해석해준다.
이제 보통 시민들도 엄청난 정보를 갖게 되고 그 정보를 분석, 해석해주는 빅 데이터를 이용하여 지방정치는 물론 중앙정치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정부와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데이터를 갖게 되고, 빅 데이터를 이용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시민과 동료 시민, 시민과 대표, 시민과 정부 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시민 간에 협동과 협력을 통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
빅 데이터 기반의 민주주의하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비로소 ‘공급수요자’(prosumer)를 넘어서 정치와 정책의 생산자이자 사용자인 프로유저(pro-user)가 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16년 선거에서 빅 데이터를 통해 ‘힘을 얻게 된’(empowered) 시민들은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와 정책을 생산하며, 정치인과 정당에 정치를 공급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치인과 정당이 행동하게끔 정치를 운용하는 정치의 생산자, 공급자이자 사용자, 운용자인 진정한 주권자인 ‘프로유저’가 될 수 있다.
2016년 병신년에 한국인들이 ‘병신’같이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한국정치를 바꾸고 개혁하는 진정한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빅 데이터를 통해 ‘힘을 얻어’ 대표들로 하여금 민의에 귀를 기울이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