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철보신은 서경 열명(說明)편, 시경 대아(大雅)의 증민(烝民)편에 나온다. 먼저 서경의 내용. 은(殷)의 무정(武丁)은 부왕에 이어 왕이 됐다. 그가 고종이다. 아버지 3년상을 마치고도 말이 없던 고종은 긴 침묵 끝에 현자 열(說)을 발탁해 그의 도움으로 선정을 폈다. 왕이 침묵하고 있을 때 신하들이 이렇게 말했다. “사물을 잘 아는 것을 명철하다 하며 명철해야만 비로소 규범을 만들 수 있습니다.”[知之曰明哲 明哲實作則] 그런데 왕이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열은 곧 부열(傅說)이다.
시경에는 주(周)의 명재상 중산보(仲山甫)가 선왕(宣王)의 명을 받고 제(齊)로 성을 쌓으러 갈 때 길보(吉甫)라는 신하가 그의 덕을 찬양한 시가 실려 있다. “지엄하신 임금의 명령을 중산보가 그대로 행하고/이 나라가 잘되고 못됨을 중산보가 밝히네/밝고 분별력 있게 행동해 제 몸을 보전하며/아침저녁으로 게을리하지 않고 임금님만 섬기네.”[肅肅王命 仲山甫將之 邦國若否 仲山甫明之 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解 以事一人]
선조수정실록 37년(1604) 3월 1일 기록에는 선조가 이언적(李彦迪·1491∼1553)을 폄하한 말이 나온다. “간흉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 있게 하고 사기(士氣)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까지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강명(講明)한 학문을 저버리지 않는 것임은 물론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도리이다.”[奸兇有所畏憚 士氣不至全泯 無負所講之學 亦明哲保身之道也] 그런데 이언적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