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질곡의 막걸리 비사(悲史)

입력 2015-12-02 10:5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윤진원 국민막걸리협동조합 사무총장

1907년 7월 조선총독부는 조세 수탈과 민족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주세령’을 공포했다. 같은 해 8월 주세령시행규칙을 공포하고 9월부터는 강제집행을 시작했다. 이어 1916년 주세법을 공식 입법화하고 단속을 더욱 강화했다. 1917년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집집마다 빚어 먹던 가양주를 전면 금지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전통주의 맥이 끊기고 일본에서 발 빠르게 건너온 주류산업 자본이 시장을 장악했으며 일본 청주가 범람했다. 다채로웠던 우리 술은 밀주로 숨어들었고 시장은 약주, 탁주, 소주로 통합 획일화를 가속화했다.

해방이 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군정은 양곡관리를 명분으로 양조금지령을 포고했다. 사실상의 금주령을 통해 밀주는 더욱 심화했고 민족의 문화유산이 계승되지 않은 채 산업화가 진행됐다. 이것이 우리가 와인, 맥주, 사케, 마오타이 등 자국을 대표하는 술이나 세계적인 명주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하게 된 역사적 기원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에서 온 청주를 조상의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리고 있다.

이후 1965년에는 양곡관리법에 의해 쌀을 이용한 술 제조가 전면 금지돼 그나마 증류식 소주도 희석식 소주로 바뀌었으며, 쌀막걸리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지금 우리가 대폿집에서, 바에서, 호프집에서 또는 가정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마시고 즐기는 술이 과연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담긴 우리 전통술인가. 우리는 술이라는 소중한 무형의 민족 문화 자산을 잃어버리고 또는 잊은 채 살아왔던 것이다.

막걸리의 경우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74년에는 약 170만㎘가 생산돼 전체 주류시장의 77%를 차지, 시장점유율 1위로 명실상부 국민주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국민 소득 수준 향상과 저질 탁주의 범람, 시장의 폐쇄적 구조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채 1988년에는 초고속 성장한 맥주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만다.

막걸리의 쇠퇴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정부의 과도한 보호와 규제에 따라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양조장에서 생산된 막걸리를 해당 시·군·구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한 판매제도가 그 원인이다. 이러한 보호 정책이 시장의 상황 변화에도 막걸리 시장의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취약하게 만든 결과로 작용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막걸리 세계화, 일본에서의 인기, 막걸리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불과 3~4년 새 1600억 원대 시장이 5000억 원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막걸리 시장이 또다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그 역사적 과정과 사연이 어찌됐든 1970년대 이후 막걸리산업 활성화의 기회를 놓쳤다. 막걸리 시장은 극히 일부 기업이 독식하고, 나머지 기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국민적 마케팅을 이어가지 못한 막걸리 산업 내부의 문제 역시 중대한 이유다. 반성 없는 발전은 없다. 그게 역사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긁어 부스럼 만든 발언?…‘티아라 왕따설’ 다시 뜨거워진 이유 [해시태그]
  • 잠자던 내 카드 포인트, ‘어카운트인포’로 쉽게 조회하고 현금화까지 [경제한줌]
  • 단독 "한 번 뗄 때마다 수 백만원 수령 가능" 가짜 용종 보험사기 기승
  • 8만 달러 터치한 비트코인, 연내 '10만 달러'도 넘보나 [Bit코인]
  • 말라가는 국내 증시…개인ㆍ외인 자금 이탈에 속수무책
  • 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 트럼프 시대 기대감 걷어내니...高환율·관세에 기업들 ‘벌벌’
  • 소문 무성하던 장현식, 4년 52억 원에 LG로…최원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 오늘의 상승종목

  • 11.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4,859,000
    • +4.08%
    • 이더리움
    • 4,468,000
    • +0.47%
    • 비트코인 캐시
    • 609,500
    • +2.52%
    • 리플
    • 819
    • +0.86%
    • 솔라나
    • 303,000
    • +6.13%
    • 에이다
    • 827
    • +0.85%
    • 이오스
    • 781
    • +5.11%
    • 트론
    • 231
    • +0.87%
    • 스텔라루멘
    • 154
    • +1.99%
    • 비트코인에스브이
    • 83,450
    • +1.52%
    • 체인링크
    • 19,630
    • -2.82%
    • 샌드박스
    • 408
    • +2.5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