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11월 25일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청년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24일 오후 5시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을 추억하는 15분짜리 영상의 첫 문구 내용이다. 이날 기념식에선 아산의 사진, 영상, 육성, 어록 등을 담은 기념 영상을 통해 그의 삶이 후세에 던지는 의미를 조명했다. 정 명예회장은 수많은 어록과 함께 극적이고, 역동적인 신화 같은 삶이 다시 그려졌다.
아산은 스스로 “나는 부유한 뇌동자(노동자의 사투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자본도 기술력도 없던 시절, 불굴의 의지로 공장 심부름꾼, 쌀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같은 글로벌 기업을 일궈냈다. 글로벌 경제 침체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발 공세로 멈칫하고 있는 작금의 한국경제에 아산의 ‘기업가 정신’이 던지는 메시지의 의미가 깊다.
◇車·중공업…‘아산의 정신’ 한국경제 중추 = 한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기념식은 아산을 추억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로 진행됐다. 정홍원 아산탄신100주년기념사업위원장(전 국무총리)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중후장대형 생산기업으로 사업을 펼쳤고, 가장 먼저 해외시장을 개척한 한국 경제의 선구자가 바로 아산”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불굴의 도전을 계속해 온 아산의 의지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좌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아산은 사라졌어도 그의 기업가 정신은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아산 타계 후 현대그룹을 모체로 했던 계열사들은 그룹별로 분리됐다. 이 중 집안의 장자 정몽구 회장이 출범시킨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빅5’에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대차는 아산 출생 100주년에 세계 고급차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제네시스로 다시 한번 질적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아산이 500원짜리 지폐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고 영국에서 지원받은 자금으로 만든 세계 1위 조선회사 현대중공업 역시 글로벌 기업 탑(TOP)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작금의 한국경제, “이봐 해봤어?” 정신 계승해야 = 이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축사에서 “정주영 회장이야말로 ‘대한민국 1세대 벤처기업가’라고 자신있게 칭할 수 있는 분”이라며 “그의 불꽃 튀는 창의력과 끝없는 모험적 도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결국 성취해 내는 개척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하는 진리”라고 말했다. 장기간에 걸친 경기침체로 정부와 산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아산의 ‘기업가 정신’을 다시 재조명하자는 의미다.
아산은 지난 20여 년 전인 1990년대부터 이미 한국의 경제둔화를 우려하며 산업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고 ‘현장’임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경제둔화 조짐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만 외칠 뿐 움직이지 않는 사회에 일침을 가했던 것이다.
아산은 자서전에선 “기업이란 냉정한 현실이고 행동함으로써 이루고 키워 나가는 것”이라며 “그저 앉아서 똑똑한 머리만 굴려서 기업을 키울 수는 없다. 똑똑한 머리만이 아니라 몸소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몽구 회장은 가족 대표 인사말을 통해 “저희 자손들은 선친의 뜻과 가르침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