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17일 “다음 달 말께 나올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 제조업에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석유화학 등은 최근 구조조정이 진행된 만큼 이외의 업종 기업들이 추가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채권은행은 현재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진행 중이다. 평가 대상 기업 중에는 지난 상반기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 B등급(부실 위험)을 받은 곳이 다수 포함됐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상반기 572개 대기업의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시행해 C등급(워크아웃) 16개, D등급(법정관리) 19개 등 총 35개의 좀비기업(한계기업)을 솎아냈다.
금융권은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이번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정기 신용위험평가가 끝난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산업 전반에 일으키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고, 계열사·협력업체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기업 구조조정 범정부 협의체 출범 이후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최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추진 중인 대기업 구조조정은 내년 총선거와는 상관없이 의지를 갖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대기업 수술이 지지부진할 수 있다는 비판적 여론을 일축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5일 임종룡 위원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 및 부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열어 철강·석유화학·건설·해운 등 4대 경기 민감형 기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의 큰 틀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철강, 석유화학 업계에 과잉설비 감축을 독려하기로 했다. 또한 해외 건설의 투자개발형 사업 활성화를 위한 펀드를 조성키로 하고, 현대상선·한진해운 합병 및 매각설로 홍역을 치른 해운은 자율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을 요구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논의 결과를 채권단이 구조조정 대상을 가려낼 때 반영토록 할 방침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대출과 보증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제대로 골라내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주문사항인 만큼 채권은행 입장에서 상응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부와 채권은행의 고민은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에는 이번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 석유화학·건설·해운 업종 기업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주로 오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범정부 차원의 산업 구조조정 추진의 뇌관이 된 조선업종은 이미 일정 수준 정리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4조2000억원의 채권단 자금 지원을 통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했으며, SPP조선도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매각을 추진 중이다. 성동조선해양은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의 추가 자금 지원과 삼성중공업의 위탁경영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이달 말 실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더불어 정부는 조선업종에 대해 저가 수주 방지를 위한 정보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조선업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권은행이 정부가 제시한 4대 취약업종의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채권은행 입장에서 부실기업 정리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인 만큼 최종 협의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