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달 중 관련산업에 대한 업황 전망과 구조조정시 시장 여파 등을 협의해 퇴출 및 인수합병 유도 등 구조조정에 나설 전망이다.
특히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악화 된 철광과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고순도 테레프탈산(TPA)와 합금철에 대한 사업 재편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개별 기업간 빅딜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겠지만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 5대업종 업황 분석 마무리…기업 구조조정 신호탄 = 이달 중순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산업통상자원부ㆍ해양수산부ㆍ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2차 회의가 열린다. 구조조정 차관회의는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각 부처 차관급 각료회의로 사실상의‘구조조정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다. 회의 개최 시기는 당초 15일경으로 알려졌지만 부처간 협의가 끝나지 않아 날짜는 아직 미정이다.
두번째 회의에서는 부처별로 경기침체 장기화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취약 5대 업종의 업황 분석을 보고 받아 검토할 예정이다.
보고서에는 전반적인 산업 동향과 업종별 경쟁력 수준, 공급 과잉 현황 분석과 업황 전망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업황 분석 결과를 놓고 부처간 논의가 마무리되면 퇴출이나 인수합병이 될 한계기업의 명단, 이른바 ‘살생부’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정부는 기업의 옥석을 가리고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해 실무작업을 나서는 것은 채권은행들의 몫으로 남긴다는 계획이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경우 채권은행들의 충담금 적립 등 부담이 있는 만큼 독립된 기업구조조정회사를 설립, 추진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전망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강제합병설이 나돌면서 불거진 관치 논란에 정부가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을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는 확고하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전날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부채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한계기업)은 전체 기업(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대상 기업 기준)의 18%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계기업을 방치해 연쇄부도라도 일어날 경우 금융 건전성을 위협함은 물론 한국 경제가 전반적인 위기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늦출수록 한국경제에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큰 만큼 무조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시장에서 M&A 거래가 안되고 솔루션이 찾지 못하면 정부의 역할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혈경쟁하는 TPAㆍ합금철 먼저 손댄다 = 철강과 화학 부문은 경기변동과 관계없이 공급 과잉으로‘제살 깎아먹기식’출혈경쟁이 심각한 TPA와 합금철 제조업체의 사업구조 개편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일반 PET병 포장용기와 폴리에스터 섬유원료로 사용되는 TPA는 세계 경기부진으로 글로벌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2~2013년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증설 여파로 중국 내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40%나 폭락하면서 국내 생산업체들은 극심한 실적 악화에 고전 중이다. 철강 부문에서는‘합금철’업종이 구조조정의 도마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합금철 시장은 2010년 까지 국내 전체 수요량의 35%를 수입에 의존했던 탓에 업체들의 증설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철강업체 불황에 철강재 생산 자체가 줄면서 원료인 합금철 수요도 크게 감소했다. 여기에 열연강판 가격이 하락하면서 합금철 제품의 가격이 크게 떨어져 수익성 악화를 부추겼다. 주요 제조업체는 동부메탈, 동일산업, 태경산업, 포스하이메탈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철강이나 석유화학 같은 경우 특정품목은 공급과잉 여지가 있다”면서 “설사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과잉ㆍ중복구조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데 이미 업체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실제 태광산업, 롯데케미칼, 삼남석유화학, 한화종합화학, 효성 등 주요 생산업체는 민간협의체까지 만들어 자체 구조조정 방안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쉽게 설비를 매각하는 식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누군가가 포기하면 자신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업계의 눈치작전은 아직도 극심한 상황”이라며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더뎌 스스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되면 결국엔 정부가 업황 현황을 면밀히 살펴 사업 재편 방향성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두 업종에 대한 수출ㆍ내수물량과 설비용량을 얼마 만큼 줄여야 할지 업계와 조율 중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업체의 생산을 특정 기업에 몰아주고 나머지 업체는 포기하는 극단적인 구조조정 방안까지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개별업체의 사업전략이나 목표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칼날을 들이대기 어려운 만큼 업계가 요구하는 방향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업종을 다른 기업에 넘기는 기업간 빅딜을 직접 권고하지 않더라도 설비 매각이나 수요와 공급의 전후방 통합 등 다양한 시나리오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