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주도로 지난달 5일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수준 이상으로 관세가 철폐된다. 뒤늦은 TPP 가입 선언을 해야 하는 우리 정부는 손익계산에 분주해졌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선 TPP 가입 시기가 늦어질수록 대일(對日) 수출 경쟁력에서 밀려 국익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TPP에는 미국·일본·캐나다·멕시코·호주·칠레·싱가포르·베트남 등 12개국이 참여한다. 참가국들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국내총생산 기준)은 40%에 육박한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뉴질랜드 등 TPP 참여국 웹사이트 등을 통해 협정문이 공개됨에 따라 범부처 ‘TPP 협정문 분석 태스크포스’를 즉시 가동해 세부 내용을 분석해 나가는 작업에 착수했다.
TPP 개방 수준이 한미 FTA와 비슷한 만큼 정부는 TPP 참여를 적극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협정문은 대부분 예상했던 내용을 담고 있어 면밀히 분석해 협상력을 키워 나가면 오히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라며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입 조건과 시기를 충분한 검토한 후 신중하게 정부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협정된 공개문에 따르면 TPP의 시장 접근 분야의 경우 회원국들은 최장 30년간 최종 95~100%(품목 수 기준)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특히 호주와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은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100% 없애는 데 합의했다. 한미 등 우리나라가 이미 체결한 FTA의 자유화 수준(98~100%, 품목수 기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개방도다.
당초 우려와는 달리 TPP가 발효되더라도 국내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으로 분석됐다. 한미 FTA의 관세가 더 높은 수준으로 철폐되는 데다 미국이 승용차 시장 개방을 늦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계, 전기·전자 분야의 경우 미국이 일본에 대해 대다수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해 피해가 우려된다. 자동차 부품 80% 이상의 관세(2.5% 수준)도 발효 즉시 폐지돼 자동차 부품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들 업종에선 TPP가 발효될 경우 일본 제품과의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
무역 규범이 강화된 것도 한국엔 불리할 수 있다. TPP 참여국들은 정부가 직간접으로 소유한 국영기업이 보조금을 받아 수출할 경우 경쟁국이 제소해 제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지적재산권 보호 등 서비스 관련 일부 조항도 한미 FTA보다 강화됐다. 원산지 완전 누적 기준 도입, 수산물 보조금 지원 금지, 환경분야 이슈 반영 등도 새로운 논점이 될 전망이다.
일본이 농산물 장벽을 크게 낮춘 것도 우리나라엔 부담이다. 한국 경제가 TPP 체제에서 계속 소외될 경우 한미 FTA 등으로 쌓은 그동안의 경제적 실익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