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침체의 여파가 미국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산업간 경기 편차가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경기 기대심리도 냉각되고 있다. 미국인들의 체감경기지수는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원유산업이 국제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석유화학은 물론 철강, 광업 등 연관 산업도 비틀거리고 있다. 아마존, 구글 등 일부 IT산업의 호조와는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부 텍사스 지역의 원유 채굴 감소가 채굴용 강관 수요 감소 → 철강 및 철광석 수요 감소 → 중장비 수요 감소로 연쇄 파장을 일으키면서 텍사스, 미주리, 일리노이, 미네소타, 노스다코타 등지에서는 감원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에너지자원산업의 중심지인 텍사스에서는 올해 2만5000명의 일자리가 없어졌고 셰일원유산업의 붐이 일어났던 노스다코다에서는 1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미주리 지역의 철강업체도 2000명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불도저, 굴삭기 등 중장비 메이커인 캐터필러는 지난 9월말 근로자 1만명 감축계획을 발표했고 세계적인 알루미늄 메이커인 알코아는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사하기로 했으며 굴지의 화학업체인 듀폰도 이달 초 대표 사퇴와 함께 대대적인 원가 절감 조치를 발표했다.
금융위기의 여파를 비켜갔던 농업도 이번에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오하오 등 곡창지대의 올해 농가소득이 2년 전보다 54%(물가지수 반영) 감소하면서 80년대 이후 3번째로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미국 농무성은 전망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작물인 옥수수의 가격이 부셸(35.2391ℓ)당 3.78달러로 3년 전 7.50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콩, 보리 등 주요 농산물 가격도 폭락하면서 2000년 IT산업 버블 붕괴와 2007년 부동산 버블 붕괴 때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 여파로 농기계 판매는 전년동기비 30% 감소하면서 대표적인 농기계 메이커인 존디어는 지난해 1500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지난 분기의 수익은 40% 감소했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은 이 같은 곡물 시세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것을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세하락이 일상의 경기침체가 아니라 슈퍼사이클 상의 침체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수요 증가로 30년간 지속된 국제 원자재 및 농산물 강세 현상이 끝나면서 장기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슈퍼싸이클은 2차 대전 이후와 미국 남북전쟁 후 장기호황을 지속하다 장기침체로 빠진 것과 같은 경기변동을 뜻한다. 미국은 대중국 밀 수출이 2011년 이후 3년간 4배나 증가했고 쇠고기도 중국 정부의 수입 금지 조치에도 홍콩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수출을 늘리는 등 농업에서 장기호황을 누렸다.
이처럼 잘 나가던 산업이 급속히 냉각되면서 그 여파는 금융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자원산업에 자금을 투입했던 투자자와 은행들은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악성부채 증가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각종 지표상에서도 불안한 경기상황이 잘 나타나고 있다. 27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내구재 주문 동향’에서 미국인들의 얼어붙은 투자 및 소비심리가 잘 나타나고 있다. 9월중 내구소비재 주문이 전월에 비해 1.2% 감소했고 8월의 주문 감소율도 3.0%로 당초 발표에 비해 1.0% 포인트 더 떨어진 것이다.
CNBC가 최근 800명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2%가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 수치는 전월에 비해 6% 높아진 것으로 지난 2013년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이후 최고치다. 반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자는 22%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호조세를 유지했던 미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부진에 빠져 있는 우리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편 27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열리고 있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현재 경제 상황을 감안해 금리인상 시점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28일 오후에 발표된다.
남진우 뉴욕 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