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천사 같은 아이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출근을 서두른다. 이제 내 엄마가 내 아이들의 엄마가 돼버렸다.
둘째 아이가 두 돌이 되며 시련이 찾아왔다. 손자를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엄마와 직급이 올라갈수록 업무가 늘어나는 내가 육아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엄마의 연세도 이제 환갑이다. 우울증과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퇴근 후에는 엄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대신 “하지 마”, “안 돼” 등의 잔소리가 늘어났다.
나 역시 지쳐 있었다. 바로 그때 큰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엄마, 혼내지 마. 엄마한테 기억을 주기 위해 저러는 거야. 사람은 기억이 있어야 행복하대”라고 말했다.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먹먹해졌다. 여섯 살 어린 아들이 한 말은 내가 잊고 있던 가슴속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이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추억인데 나는 육아와 일을 짐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 부부는 가족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 대화했다. 우선 아동 전문가와 상담하기로 했다. 놀이 전문 방문 교사도 신청했다. 친정엄마는 워킹맘을 둔 워킹 그랜맘으로 활력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의무감으로 키즈파크나 놀이동산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는 아이들과 시기에 맞는 놀이를 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회사와 가정이 균형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완벽해지려고 욕심을 부릴수록 또다시 슬럼프에 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내게 건넨 “기억이 생기면 행복해진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실마리를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