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중종 34년(1539) 10월 2일의 기록에 ‘靡不有初 鮮克有終(미불유초 선극유종)’이 나온다. 시강관 이찬(李澯)이 석강(夕講)에 임문(臨文)해 이렇게 아뢰었다. 임문은 책을 펴놓고 읽는 것이다.
“옛말에 시작은 누구나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람은 드물다 했습니다. 즉위 초년엔 어느 임금이나 잘 다스리겠다는 마음으로 정무에 힘쓰지 않는 이가 없지만 정사를 본 지 오래고 연세가 높아지면 점점 처음만 못함은 물론 나태한 마음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古云 靡不有初 鮮克有終 人君爲治之心 卽位之初 無有不勤者 至於臨政日久 春秋已晩 則漸不如初 而怠倦繼之]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성묘(成廟)께서는 크게 능력을 발휘한 임금이셨는데도 신하가 ‘시작은 누구나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이는 드물다’고 아뢰자 ‘지당한 말이다. 내 마땅히 머리맡 병풍에 써놓고 스스로 경계하겠다’고 하셨다 합니다.” 성묘는 성종이다.
과연 이보다 62년 전인 성종 8년(1477) 9월 13일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다.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이 경연 때 “靡不有初 鮮克有終 여덟 자를 판자 위에 써 좌우(座右)에 두고 출입하실 때 관성(觀省)하여 잠시도 잊지 않으시면 (중략) 아름다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성종은 “그대 말이 대단히 좋다. 다만 침실에 이미 설치했고, 또 예전 사람의 경계하는 말을 병풍 위에 기록해 관성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