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9월 19일 금요일 오후 4시(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100여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인파 대부분을 차지한 중국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는가 하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과 홍콩 액션스타 리롄제(이연걸)가 막 NYSE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NYSE 건물 외벽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NYSE welcomes ‘Alibaba Group’(뉴욕증권거래소는 알리바바그룹을 환영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 ‘알리바바’가 주문을 외워 굳게 닫혔던 바위 문을 열었듯이, 이날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도 세계 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주문의 효력이 약했던 걸까. 알리바바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조품을 거래한다는 짝퉁업체라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기대는 실망으로, 믿음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그런 알리바바의 모습이 꼭 중국 경제를 연상케 한다. 미국과 함께 ‘G2’의 위용을 과시해온 중국 경제의 기세는 꺾인 지 오래됐고, 이제 ‘투자하면 안 되는 곳’,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곳’으로 변질됐다.
◇ 화려한 등장…1년도 못 간 뉴욕 입성 신화=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데뷔는 그야말로 화려했다. 이날 알리바바의 주가는 공모가 68달러에서 무려 38.09% 폭등한 93.89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2314억4000만 달러로 전자상거래 업계를 주름잡고 있던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NYSE에서 근무하는 마크 오토는 “뉴욕 증권 바닥에서 20년 동안 일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IPO였다”고 감탄했다. 마 회장은 물론 알리바바 임직원들도 1인당 평균 422만 달러에 육박하는 상장 차익을 챙겼다고 중국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뉴욕증시 상장 후 알리바바는 물론 마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연일 화제였다. 상장 한 달이 넘어선 10월 28일에는 장중에 시총 247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월마트의 2451억 달러를 제치기도 했다. 그해 2분기(2014년 7~9월) 실적도 만족스러웠다. 당시 매출은 54%나 급증해 168억 위안(약 3조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39% 급감했으나 시장 전문가들은 알리바바의 실적을 기대 이상으로 평가했다. 이뿐인가, 일명 ‘싱글데이’였던 11월 11일에는 17분 만에 10억 달러(약 1조176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주가는 120달러(10일 기준 119.15달러)에 육박하며 투자자들은 주머니에 돈을 가득 채웠다.
이 같은 눈부신 행보에 세계적 투자의 대가들도 알리바바에 마음을 열었다.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알리바바 주식 440만 주를 사들였고,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한 대니얼 롭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 역시 알리바바 주식 720만 주를 매입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가 있는 야누스캐피털매니지먼트도 알리바바 주식을 340만 주를 사들였다. 일부 헤지펀드는 알리바바의 주식을 사려고 애플의 주식 보유량을 줄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해 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알리바바를 “미국 유통업계의 ‘공공의 적’이 됐다”고 표현하며 영향력을 인정했다. 마 회장도 “월마트를 뛰어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밝히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봄날도 잠시, 올초부터 알리바바에 소리 없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들고 나온 중국 정부가 백서까지 발간하면서 이례적으로 알리바바의 ‘짝퉁 문제’를 조준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제재는 곧바로 알리바바의 주가에 반영됐다. 1월 28일 알리바바의 시총은 하루 만에 시가총액 110억 달러(약 12조 원)나 증발했다. 이때부터 알리바바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올 들어 9월까지 월간 기준 변동폭은 5월 한 달만 상승했고, 나머지 8개월은 모두 하락했다.
알리바바를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도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이쯤 알리바바가 2014회계연도 3분기(10~12월) 실적을 발표하며 매출 42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으나, 시장은 기대치를 밑돌았다며 우려했다. 매출액은 작년보다 무려 40%나 증가한 수치였지만 이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알리바바는 ‘성공의 아이콘’에서 ‘위기의 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알리바바의 시총은 하루 만에(1월 29일) 141억 달러가 날아갔다.
이후 마 회장은 중국 정부에 짝퉁 방지대책을 약속하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지금까지도 작년 IPO 때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개발, 무인기 배송, 인도시장 진출 등 숨 가쁘게 사업 계획을 내놓았으나 오히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또다시 위조상품 유통 의혹을 받고 만다.
그리고 뉴욕증시에 상장한 지 약 9개월이 됐을 시점인 5월에 결국 알리바바의 주가는 처음으로 8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대니얼 장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하고, 골드만삭스에서 부회장을 지냈던 마이클 에반스를 영입하며 인적 쇄신을 단행했으나 이도 기대만큼 시장을 안심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마 회장은 중국증시가 폭락한 주범으로 몰렸고, 이를 해명하는 데 급급했다. 알리바바의 주가는 9월 8일 60.19달러를 기록해 NYSE 상장 이후 최악의 주가를 기록했다.
미국 금융정보지 ‘배런스’는 “알리바바의 주가가 50% 폭락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추론을 주가에 적용하면 알리바바의 주가는 30달러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알리바바는 “해당 기사가 부정확하고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알리바바를 향한 시장의 눈길은 이미 싸늘해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