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 미디어버스(media-verse)] TV 안팎에 도사린 남성 중심적 시각

입력 2015-09-2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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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기획취재팀장

‘사람들은 생각보다 마초적이고 가학(加虐)적인 존재구나.’

지난 휴일 한 식당에 켜져 있던 TV 프로그램을, 그리고 그걸 낄낄거리며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남성 연예인들이 실제 군대에서 병영 훈련을 체험하는 내용이 큰 줄기인 프로그램. 남성 출연자가 생각지 못한 유약함을 갖고 있다든지, 혹은 알고 보니 매우 용맹하다든지 하는 연예인 개인의 캐릭터를 확인하기도 하고, 병영 생활이란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만들어지는 동지애라든지 이런 걸 보고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최근엔 ‘여군 특집’이 방송되고 있다. 여성들이 훈련을 받아봤을 리 만무. 기초 체력도 안 되니 빌빌댈 수밖에 없고 그걸 보고 사람들은 웃는다. 여성 시청자도 재밌어 한다. 재밌는 건 재밌는 것이지만 무비판적으로 봐도 될까 싶다. 아마 여기서 조금이라도 가상의 군 생활에 잘 적응하거나 힘든 일도 척척 해낸다면 TV 화면에는 ‘여전사’란 무지막지한 수식의 자막이 떴을 것이며,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 그리고 남용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여군’들이 훈련소에서 잰 몸무게가 공개되는 것도 폭력적으로 보였더랬다. 대체 여성들은 왜 나온 걸까.

지난 주말 한 신문 칼럼을 보았다. 모 케이블 방송에서 시작한 ‘40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프로그램에 대해 지적하고 있었는데 ‘아,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싶었다.

젊지 않으면 시청자도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타깃 시청자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시대에 어른들을 타깃으로 한다니 반가운 일. 그런데 등장하는 4명의 어른은 모두 중년의 남성뿐. 게스트는 또 모두 여성. 그중 한 여성이 나이 많은 남성 출연자에게 “오빠!”라고 하니 웃음꽃이 핀다. 칼럼니스트는 “이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의 역할과 대한민국 남자 어른의 세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직장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도 기를 못 펴는 남성 어른들은 위로받아야 하고 그것은 여성들의 애교나 웃음 따위로 가능한 것인가.

방송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개 주변인 역할을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존재감이 적다. MBC ‘무한도전’이 여성이란 아이템으로 몇 차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출연자의 여성 이상형에 대한 얘기가 너무 외모 중심으로만 흘렀을 때, 그리고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사람을 여섯 번째 멤버로 받아들이는지 여부를 놓고서였다. 여섯 번째 멤버로 여성을 택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지만 소수였고, 곧 사라졌다.

다른 프로그램들도 그렇다. 여성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도 극히 적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여성 진행자는 휘어잡는 힘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과연 계량적으로 분석된 결론일까.

여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연륜이나 전문성, 그런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 오히려 연륜이 깊어질수록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시네 페미니즘(cine-feminism)’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영화학자 로라 멀비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을 남성의 응시대상으로 만드는 관습화된 ‘남성적 시선’(maze gaze)이 존재한다고 했다. 방송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팔순의 나이까지 ‘인터뷰의 여왕’이었던 바바라 월터스는 작년에야 은퇴했다. 팔순은커녕 우리나라 방송에서 절반을 뚝 꺾은 40대 이상의 여성 단독 진행자 얼마나 있나. 한 손만 써도 충분히 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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