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공천과 관련해 바로 이 룰을 바꾸는 안을 내놓았다.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인단을 구성해, 이들의 투표가 공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 바로 발칵 하고 나섰다. 말이 ‘혁신’이고 ‘국민’이지, 결국은 친노 세력의 ‘패권주의’를 강화한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자 다시 당 대표를 비롯한 혁신안 지지 세력들이 반문하고 나섰다. 국민으로부터 지지받고,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데 왜 이리 발목을 잡느냐는 것이다. 당 대표는 심지어 이런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국민과 당원으로부터 재신임을 묻는 절차를 강행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 양쪽 다 틀렸다. 먼저 혁신위원회의 주장을 따져 보자. 당장에 국민의 정치와 정당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문제다.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정신 나간 일’ 정도로 인식되는 상황에 누가 과연 국민선거인단에 참여하겠나. 대체로 두 부류, 즉 동원된 참여이거나, 아니면 특정한 가치나 상징을 열렬히 추종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동원된 참여가 왜 문제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정치과정과 결과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투표참여 요청 등으로 국민을 피곤하고 짜증 나게 만든다. 비슷한 형태의 경선을 치러 본 사람이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 즉 특정 가치나 상징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과다대표도 문제가 된다. 먼저 결과의 편향성이다. 결국 이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가 이뤄질 텐데 이것은 자칫 당을 한쪽 극단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당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닫히게 된다. 모바일 투표 등에 따른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바로 이 점, 즉 특정 집단이 과다대표가 되는 문제 때문에 당내 권력투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 이들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국민참여’가 곧 자신들을 죽이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상황이 그런 것 아닐까? 즉 대중적 ‘친노’ 세력의 집단적 참여를 우려하는 ‘비노’의 경계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황상 오해의 소지는 있다. 제대로 된 혁신안이라면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 이를테면 지금의 문제가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당이나 의회제도 자체의 문제인지부터 고민했어야 했다. 그래서 더 큰 그림을 내놓고 그것으로 혁신의 명분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런 큰 틀의 고민 없이, 겨우 내놓은 것이 세력교체를 수반할 수 있는 안이다. 그것도 2002년 대선 후로는 큰 재미도 없었던 ‘국민참여’ 안이다. 좋은 영화도 처음 볼 때나 감동받는 법이다. 이렇게 깊은 정치적 냉소 속에서 그 정도로 뭐가 그리 달라지겠나? 그러니 혁신이 아니라 세력 교체를 위한 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세력 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그 새로운 세력이 새로운 세력다워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도 못하다. ‘친노’니 ‘비노’니 하며 전직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뭐가 없다는 말이다.
혁신안을 반대하는 쪽도 문제다. 밀리는 쪽이니 짧게만 이야기하자. 반대를 할 때는 그 나름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들리는 것이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거나 ‘친노 패권’에 대한 비판이다. 왜 ‘친노 패권’은 안 되는지, 왜 자신들이 정치권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다시 한 번 국민이 딱하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패권 싸움이나 연구하고 있는 것 같은 제1야당을 둔 국민이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