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여론의 뭇매를 제대로 맞았습니다. 비난의 대상은 바로 포털사이트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CEO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 업계에서 야후의 쇄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메이어 CEO가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바로 출산 휴가 때문이었습니다.
메이어 CEO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쌍둥이를 임신했고, 연말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베일에 가려둔 ‘비밀주의’의 국내 CEO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이를 두고 포브스는 메이어 CEO가 임신 사실을 공개한 것은 CEO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나 업무성과를 주주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가 자신의 후두암을 숨기지 않고 밝혔던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메이어 CEO가 출산 휴가를 충분하게 쓰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었습니다. 메이어 CEO는 3년 전 아들을 낳았을 때 3주 만에 복귀해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출산 후 조기 복귀’라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메이어 CEO는 이번에도 자신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출산 후 최소한의 시간만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밝히면 비난을 받을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 메이어 CEO는 왜 또다시 뭇매를 감수했을까요. 아마 ‘CEO’란 직함의 책임감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얼마 전 CNN머니가 자체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니 S&P500에 상장된 기업의 CEO 가운데 14.2%만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 대통령,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등 여성의 입김이 세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의 ‘높은 자리’는 여성들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메이어 CEO의 선택을 이해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마리사 메이어’가 일반 직원이 아닌 회사 경영을 책임져야 하는 CEO라는 점입니다. 메이어 CEO가 출산 휴가를 일부러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CEO의 역할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복지혜택을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메이어 CEO의 선택을 두고 일반 여성 직원들의 출산 휴가 행태와 연관시켜 비교하는 것은 성(性)만 비교한 근시안적인 시각이라는 얘기입니다.
야후는 현재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올해 실적도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4분기에 마무리 짓기로 한 알리바바 지분 분사 작업도 과제로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메이어 CEO가 “국가에서 정해준 출사 휴가를 충분히 보낸 후 복귀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면 시장은 야후라는 기업을, 메이어라는 CEO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포브스는 “남자 CEO들이 출산 휴가를 안 쓰는 것은 왜 전혀 비난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CEO의 역할에 대해서 재미있는 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메이어 CEO가 자신에게 부여된 복지를 포기하면서까지 기업 경영에 주안점을 둔 이번 결정을 존중해야 줘야 한다는 의견에 한 표 보냅니다. 그리고 메이어 CEO의 출산 휴가 결정이 일반 여성 직원들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해서는 의견에 또 한 표 보냅니다.
메이어 CEO가 연말에 쌍둥이를 출산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다면 지금의 논란이 다시 불거지겠죠. 그러나 그때는 여성 CEO가 견뎌야 하는 높은 기준의 잣대, 스스로 여성의 복지를 포기한 한 기업인의 결정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커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