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완화’ 등을 법제화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시됐다. 정부의 행정지침만으로는 구속력이 없어 노동 개혁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이들 두가지 쟁점이 입법 형태로 추진되면 ‘중장기 과제’로 넘어가 노사정 대타협의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계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마련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가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고 노동조건을 완화한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시한을 못박은 오는 10일까지 노사정 대타협이 성사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쟁점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 재개 이후 처음으로 노사정 대표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쟁점 의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김대환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가 시작된 지 1년여가 된 지금 마지막 능선을 넘기 위한 결단의 시점이 왔다”면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의 두 가지 쟁점은 치명적 이슈가 아니며, 이를 둘러싼 공방은 이미지만을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날 토론회가 그동안의 오해를 이해로 바꿔 두 쟁점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물꼬를 터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일반해고 지침이 만들어지면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는 ‘일반해고’가 도입된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날 토론회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등 한계가 있는 가이드라인만으로는 노동개혁의 목적 달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노동개혁은 미래지향적인 변화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법령의 개폐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노동개혁은 단기간에 포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중요도와 긴급성을 고려해 단계적 프로그램 마련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취업규칙 변경과 해고제도의 법제화는 노사정과 학계의 공동연구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혁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자로 나선 학계 전문가들도 법 제도로 보완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가이드라인 활용 방안은 법적 다툼 발생시 실효적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낮고 법원 판결이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기업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취업규칙 변경의 경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면 법 개정을 목표로 사회적 합의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일반해고 관련 절차 마련은 평가시스템의 신뢰성ㆍ타당성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상황에서 의도한 효과 없이 비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박수근 한양대 교수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업무능력을 평가하고 저성과자에 대해 인사와 적정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공정한 평가기준과 구체적 절차를 법과 제도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 법리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일반해고 관련 사안에 대해선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가 손쉽게 해고분쟁을 포기하는 현실과 소모적 해고분쟁이 남용되고 있는 현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중적 상황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뒤이은 노사정 토론자들의 토론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정부의 행정지침 및 가이드라인은 상위법의 범위를 넘어서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의 혼란과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취업규칙 변경 및 일반해고 관련 지침 마련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취업규칙 변경과 근로계약 해지 등 제도화에는 찬성하지만, 정부 지침보다는 입법적 해결로 합리성ㆍ명확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법률과 판례를 바탕으로 취업규칙 변경 관련 지침을 우선 마련하고 업무 부적응자에 대한 공정한 인사관리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시된 대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이 입법 형태로 추진될 경우 ‘대화와 합의로 추진한다’ 정도의 원론적인 선언이 이뤄진 후 중장기 과제로 논의되는 방안이 유력해보인다. 이렇게 되면 노사정 대화의 최대 쟁점이 추후 논의사항으로 미뤄져 노사정 대타협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그러나 노정간 입장차는 좁히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오는 10일까지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지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쟁점 토론회’에 대해 “업무성과가 낮다는 핑계로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하는 제도 도입을 공론화하고 법제화 할 것까지 공식적으로 논의되는 토론회”라며 “‘쉬운 해고’ 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