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가 벌써부터 ‘기업 감사’로 변질될 조짐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9월 위기설’마저 나도는 등 우리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정치권에는 이번에도 기업 총수들의 막무가내식 호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10일 시작하는 제19대 국회의 국감에서 정무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등 7개가 넘는 상임위에서 기업 총수들을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현재 이들 상임위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웬만한 기업 총수들의 이름이 대부분 오르내리고 있다.
국감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정 회장의 경우 올해는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무역이득 공유제와 관련해 증인 채택 요구가 나왔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통합 과정과 삼성서울병원의 운영주체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출석 필요성이 검토되고 있다.
롯데가는 ‘형제의 난’으로 불거진 지배구조 문제, 골목상권 침해, 면세점 독과점 논란 등으로 신동빈·동주 형제의 증인 출석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정무위와 보건복지위, 신동빈·동주 회장 형제의 경우 정무위, 산자위, 기재위 등 3개 상임위에서 증인 채택을 추진하고 있어 겹치기 논란이 예상된다.
조 회장은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정 부회장은 이마트 불법파견 논란 등과 관련해 일부 의원의 증인 출석 요구가 있었다.
재계는 이번 국감이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대형 정치 이벤트인 만큼 기업 총수를 이용한 국회의 인기 영합적 행보가 계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호통 국감’, ‘시선끌기용 국감’이 되풀이 돼 본연의 정책 국감은 이번에도 불가능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국내 대기업의 실적 악화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국회의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중국 증시 폭락과 이달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감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증시가 일제히 조정을 겪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발언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위기 극복을 위해 분초를 쪼개며 활동하고 있는 기업 총수들의 손발을 하루 종일 묶어두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