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오래전부터 선박금융기금과 해운보증기금 설립에 대한 검토를 해왔지만,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왔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추진했지만, 이 역시 하루 아침에 백지화됐다. 또 지난해 하반기 출범 예정이었던 5500억원 규모의 해운보증기금도 정부 부처 간 의견 차이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결국 수년간 이뤄지지 못했던 해운 금융 지원책의 결과물이 이제서야 보여진 셈이다.
정부는 이번 한국해양보증보험 출범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보증보험 출범 배경과 목적, 지원책 등이 진정으로 해운사에 도움이 되는지 말이다.
우선 자본금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한국해양보증보험의 총 자본금은 연말까지 1250억원, 향후에는 5500억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500억원의 자본금으로 향후 20년간 총 744척의 선박을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이 금액은 배 한두 척 만들면 바닥나는 금액이다.
다른 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융 지원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세계 5위 선사인 COSCO는 중국은행으로부터 11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신용 제공을 받았고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매년 10조원 이상 지원받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전 해운업계를 대상으로 ‘이자율 1%, 10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 CMA CGM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로부터 신속하게 1억5000만 달러(약 1770억원)를 지원받아 회복은 물론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까지 했다. 작은 규모의 지원금과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생색만 내고 있는 우리 정부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번에 출범한 해양보증보험의 금융지원 기준 역시 상당히 까다롭다. 장기운송계약을 맺은 선사들에 한해 금융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기계약을 맺고 운송을 하는 상당수 선사들은 금융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이뿐 아니다.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해운’ 보증보험이 아닌 ‘해양’ 보증보험이다. 얼핏 보면 그럴싸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정부는 해양보증보험 출범으로 해운은 물론 항공, 발전, 산업플랜트 분야에도 보증보험을 제공하겠다면서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적선사에게만 출자를 강요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해운사에게만 돈을 걷어 나머지 분야에 도움을 주겠다는 논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우리를 도와주겠다며 우리에게 돈을 내라는 이상한 논리”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한다.
정부는 해운업을 국가 기간산업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원책을 고민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와닿지가 않는다. 해양보증보험만 봐도 명분은 보이지 않고, 그저 조삼모사격 생색내기 정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적 선사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선진국들의 진정성을 반만이라도 따라가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