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잘 나간다고 볼 수 있는 통화정책국 출신들에게도 흑역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은행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온 김중수 전임 총재(2010년 4월~2014년 3월)가 재임했던 때다.
당시 김 전 총재는 “한은이 신의 직장, 철밥통 같은 수식어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을 만들자”며 연공서열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와 동시에 통화정책국 출신들이 다른 국 출신들보다 승진에서 우대받는 ‘전통’도 바꾸려고 했다. 이를 두고 탕평 인사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통화정책국에는 이미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만큼 이들이 더 많이 승진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반박도 상당했다.
당시 비운을 겪은 이로는 우선 정희전 서울외국환중개 사장과 이흥모 한은 부총재보가 꼽힌다. 정 사장은 1998년 통화정책국(당시 명칭 정책기획국)이 신설된 이후 임명된 총 10명의 국장 중 유일하게 임원인 부총재보로 승진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능력 부족 때문이기보다는 김중수 총재 시절 통화정책국 출신들에 대한 역차별이 이뤄졌다는 것이 한은 내부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흥모 부총재보는 당시 한은 내부에서 다수가 인정하는 ‘차기’ 통화정책국장이었다. 많은 한은맨들이 그의 능력을 부러워했다. 특히 그는 보고서, 연설문 등의 작성 능력이 출중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은 한 국장은 “한은에서는 입행과 동시에 보고서 작성, 즉 글쓰기를 높은 강도로 끊임없이 훈련받는데 통상 통화정책국 출신들은 복잡한 경제·금융상황 전반을 조망하면서도 핵심을 뽑아 논리적으로 글을 잘 쓰는 이가 많다”며 “이흥모 부총재보는 그런 측면에서 탁월한 것에서 더 나아가 창의적인 방식으로 글을 작성해 직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부총재보는 발권국장을 맡은 것을 끝으로 김중수 전임 총재 때 같은 통화정책 라인인 이상우 전 조사국장, 민성기 은행연합회 전무와 함께 한은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마찬가지로 윤면식 부총재보, 허진호 현 통화정책국장도 김중수 총재 시절 본부 조직에서 한동안 밀려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