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요 며칠새 천당으로 갔다가 지옥으로 추락한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새처럼 아마존이 잘 나간 적이 없습니다.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는 지난 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9200만 달러 순이익을 올렸다고 밝혀 ‘어닝서프라이즈’를 연출했습니다. 막강한 경쟁자인 중국 알리바바그룹홀딩이 주춤하는 동안 아마존은 시가총액이 2400억 달러(약 284조원)를 넘어 월마트를 제치고 세계 최대 소매업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혁신 전도사’를 자처하던 아마존은 뉴욕타임스(NYT)의 16일(현지시간) 기사로 하루아침에 직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악덕 기업’이 됐습니다. NYT는 1면 톱기사와 2면에 걸쳐 아마존의 회사 생활 실태를 생생하게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면서도 잔혹한 일화들로 가득 찼습니다. NYT는 적자생존과 자연도태라는 ‘다위니즘’에 따라 아마존이 움직인다고 고발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입니다. 회의 시간에는 서로의 아이디어에 대해 공격하기 바쁩니다. 항상 밤늦게까지 일하기를 강요받고 자정을 넘어 이메일이 도착하고 바로 답신을 보내지 않으면 “왜 답하지 않느냐”는 상사의 문자 메시지가 옵니다. 회사 내부에는 비밀보고시스템이 있어 동료가 일찍 퇴근한다거나 메신저를 자주 쓴다거나 하면 고자질하도록 독려합니다. 한 전 직원은 “나와 함께 일했던 거의 모든 동료가 책상에서 얼굴을 파묻고 우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보도에 베조스 CEO는 17일 회사 메모를 통해 반박합니다. 그는 “기사에 묘사된 아마존은 내가 아는 아마존이 아니다. 나라도 그런 직장에 다닌다면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정말로 그런 일이 있다면 인사팀에 보고하거나 아니면 나한테 이메일을 직접 보내도 좋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현재처럼 경쟁이 치열한 기술시장에서 NYT 기사와 같은 경영전략을 채택한 회사라면 번창하기는커녕 살아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딕 코스톨로 전 트위터 CEO도 “기사가 과장된 것처럼 보인다”며 베조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기사가 맞고 안 맞고를 제쳐놓고라도 베조스의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실리콘밸리가 닷컴버블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지금 페이스북과 구글 애플 등 대표 기업들은 인재 영입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마존 분위기가 이처럼 지옥 같다면 과연 지금처럼 혁신을 주도하면서 잘 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NYT의 논조가 너무 자극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기사는 베조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데이터 중심의 경영을 신봉했다면서 그의 2010년 프린스턴대 졸업연설 내용을 끄집어냅니다. 당시 연설에서 베조스는 10살 때 할머니가 담배를 끊게 하려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애원하는 대신 “담배 연기 한 모금보다 수명이 9년 줄어든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네요. 베조스의 연설을 인용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이런 일화를 든 것은 그가 냉혹한 인간이라는 점을 과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직장인의 천국’이라고 칭송을 받는 마당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 베조스가 반성해야 할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직사이트 글래스도어에서 아마존 전ㆍ현직 직원들의 베조스의 리더십에 대한 지지율은 82%에 달했지만 ‘아마존을 친구에게 추천하겠느냐’는 물음에는 62%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아마존 경쟁 상대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마존에 대한 NYT의 비판이 과도하다는 점을 꼬집으면서도 아픈 직원이나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제기된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마존은 ‘고객제일주의’나 ‘크게 생각하라’와 같은 14개 경영 원칙을 직원들에게 주지시킵니다. 여기에 15번째 원칙이 추가돼야 하지 않을까요. ‘배려’또는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