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가 되려 한다면 어찌 스승을 따르지 않으리오?”[欲爲君子 何不從師], “스승을 어버이처럼 섬기며 공경하고 존경하라.”[事師如親 必恭必敬], “스승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말고 반드시 스승의 인도에 따르라.”[勿逆師敎 必從師導], “네 스스로 아는 게 아니면 오직 스승이 가르쳐주신 것”[非爾自知 唯師敎之], “네 스스로 행동하는 게 아니면 오직 스승이 인도하신 것”[非爾自行 唯師導之], “그 은혜와 공은 하늘 땅과 같다.”[其恩其功 亦如天地], 이런 말을 외우기 좋게 네 글자 단위로 만들었다.
소학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좇는다”[負芨從師 不遠千里]는 말도 있다. 타향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을 부급(負芨)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택사삼년(擇師三年), 스승을 고르는 데 삼년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스승을 따르되 얽매이지 말라는 말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장자’ 칙양(則陽)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옛날 탕왕은 사어이자 문윤인 등항을 등용해 스승으로 삼고 좇았다. 그러나 그에게 속박되지 않아 만물의 생성변화에 자신을 맡길 수 있었다.”[湯得其司御門尹登恒 爲之傅之 從師而不囿 得其隨成] 사어는 수레 담당관, 문윤은 수문장을 말한다. 여기 나온 囿(유)는 제왕들이 금수를 기르거나 연회를 즐기려고 조성한, 담이 있는 동산이다. 맹자 양혜왕(梁惠王) 편에도 이 말이 나온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제자가 종사이불유(從師而不囿)를 할 수 있게 스승이 자율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게 아닐까? 종사이불유를 ‘스승을 따라 걸림이 없게’ 행동한다고 새긴 책도 있던데, 아무래도 잘못된 해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