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아버지는 일하고 아들은 논다”는 선정적 타이틀대로 청년 실업률이 장년 실업률의 3~4배에 이른다는 우울한 상황이고 보니, ‘재학 중’이란 지위가 ‘졸업생’보다 취업에 유리할 것이란 판단 하에 일단 졸업을 미루고 보는 학생들이 급증하면서, 2월과 8월 졸업생 비율이 대략 6:4에 이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로 정착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선 이들 ‘0학점 등록생’으로 인해 교수 대비 재학생 숫자에 있어 대학 평가 시 불리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도서관 및 기타 학교시설 이용 시 재학생들과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에,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와중에 수만 명이 응시했던 서류전형의 경쟁을 뚫고 심지어 7번이나 거쳐야 된다는 면접의 관문까지 넘어 취업전쟁에서 승리한 이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어깨 활짝 펴고 보무도 당당하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리라 예상했건만, 예기치 않았던 반전(反轉)의 징후가 감지되고 있음은 어인 일인지. 이를 일컬어 ‘파랑새 증후군’이란 신조어까지 출현했다는 소식이다.
실제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규직에 입사한 20대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마침내 좁은 문을 뚫고 난 후의 성취감이나, 이제 밥벌이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 혹은 조직의 발전과 나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겠노라는 젊음의 패기 등을 기대했건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왠지 이곳에선 나의 꿈을 이룰 수 없을 듯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밀려오네요”,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해 오신 부모님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등의 고백이 줄을 이었고, 뒤이어 퇴근 후 학원에 등록해서 영어와 중국어 공부에 매달리거나,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하여 이직을 시도해봄은 다반사요, 때론 각종 고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과감히 퇴사했다는 경우도 있었고, 전문 대학원에 도전하여 인생역전을 꿈꾸는 친구들 스토리도 풍성하게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대학입학 면접 당시의 풍경이 오버랩되어 온다. 면접 시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로,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시절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를 물으면, 수험생들 답은 손에 꼽을 만큼 정형화되어 있다. 외국어 관련 학과를 지망하는 경우는 너나없이 외교관 아니면 동시 통역사를 꿈꾸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판·검사가 되거나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는 답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행정고시에 도전하여 공무원이 되겠다는 의견도 단골 답안이요, 유명 방송인을 거명하며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도 수많은 수험생들의 공유된 꿈 목록 중 하나다. (어쩌면 꿈에 관한 질문에 정답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 합격의 기쁨도 잠시, 면접관에게 제시했던 모범답안을 뒤로하고 보다 현실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지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솔직한 목소리에 귀기울여 본 적 없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리하여 제대로 된 꿈을 꾸어본 적도 없고 꿈이란 어떻게 꾸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20대 초반의 황금기를 소모적으로 낭비하는 것이, 천문학적 규모의 대입 사교육도 모자라 취업 사교육 시장까지 팽창일로에 있는 우리네의 냉혹한 현주소이다.
“명문대 들어갔을 때는 그나마 부모님 얼굴 볼 면목이라도 있었는데, 00은행 입사로는 부모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고백이다. 꿈이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내가 도전하고픈 가능성임을, 거창한 것만 꿈이 아니라 소박한 것도 꿈일 수 있음을, 포기하는 건 망상이요 환상이요 공상일 뿐이란 것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할 것 같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신기루 같은 꿈을 좇아 이리저리 날아만 다니는 시행착오를 끊어낼 수 있으려면 말이다.